"예술가에 대한 지원 없으나 꿋꿋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터"
올해로 창간 4주년을 맞는 아츠앤컬쳐는 변화를 추구해 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이 있는 2월, 우리의 것을 아름답게 가꾸고 전해가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담은 작품을 표지로 선정하기로 한 것.
이에 서울시무형문화재 전수 교육 보조자인 자수연구가 손경숙의 작품을 표지로 선정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친정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손재주로 자주예술가인 언니 손인숙과 더불어 자수로 작품을 만들어 온 손경숙은 이화여자대학 자수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친정어머니가 직접 옷을 지어주실 때
마다 어깨 너머로 바느질을 익혔다.
교장선생님이셨던 친정어머니는 세 딸들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실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자란덕분에 자매들은 타고난 솜씨에 창조적인 재능을 더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자수는 주로 베개, 경대, 보자기, 수저 집등에 놓는데 이들은 대부분 혼수품에 속한다.
혼례을 앞둔 신부가 손수 수를 놓아 정성스럽게 마련했던 것이다.
이밖에 여성들이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치장하던 장신구에도 수가 놓아진다.
노리개, 허리띠, 팔찌, 꽃신 등에 수놓은 문양들은 화려한 멋스러움과 더불어 주술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과 창조적인 면을 살려 전통이 깃들었지만 현대의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는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능을 익히기보다 창의력을 길러야
북촌 한옥마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자수예술가 손경숙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열린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항상 스스로에게 되묻곤 합니다. 내가 정말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 나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배우건 처음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방식을 처음 익히게 되면 나중에 교정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르칠 때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당부하지요. 혹시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하라고. 스승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스승이라고 해서 무조건 내 말대로 따르라고만 하면 곤란하죠.”
그에게 자수를 배우기 위해 학생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기도 하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온다.
그렇게 자수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도 각양각색이다.
“저에게 자수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다양한 편입니다. 20대 초중반의 여성분들부터 50대의 여성까지 있고 30대 남자분도 있습니다. 배우는 목적 또한 다양합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배우는 분들부터 취미로 배우는 분, 뜻이 있어 이쪽 길을 택하고자 하는 분들까지 각자 목적이 다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떤 목적을 가졌건 가르치는 원칙은 동일합니다. 자수를 놓는 것은 단순히 기능을 익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기능을 익힐 것이라면 재봉틀을 배워서 빠르고 정확하게 놓는 것을 배워야겠지요.
손으로 직접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과정이나 수를 놓기 이전에 도안을 구상하고 그리는 과정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저에게서 배웠다고 해서 제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제 것을 바탕으로 하되 본인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끔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제 방식입니다
또 자수를 배우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학생들 각자 주특기가 다른데 특정한 방식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학생들끼리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면서 실력
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이죠.”
예술가에 대한 지원 없으나 꿋꿋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터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수를 놓다 보면 어깨가 뭉치거나 결리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역시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받 아들여진다고 한다.
몇 번을 되물어도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단 한 번도 수놓는 일을 그만 둬야겠다고 마음먹거나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즐기면서 하는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축복인가.
육체적인 힘듦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희열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골무, 수저 집, 모시조각보, 노리개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이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탈이다.
평면에 입체감을 살려 우리의 탈을 그대로 재현해낸 이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처음에는 실제 탈위에 수를 놓아보았는데 입체감을 살리려고 한 시도는 좋았지만 수를 놓고 보니 아무래도 튀어나온 부분은 실이 들뜨고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평면에 수를 놓는 방법을 택해 지금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화려함이 두드러지는 중국의 가면이나 신을 상징하는 일본의 가면과 달리 한국의 ‘탈’은 양반사회가 존재했던 시절의 서민의 모습과 삶을 담고 있다.
본모습을 감추려는 가면이 아닌, 삶의 감정을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내준 탈인 셈이다.
이를 통해 삶의 애환을 표출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의 탈이 자수를 통해 새롭게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제가 자수를 놓게 된 데에는 어머니와 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자수를 놓으시고 언니 또한 자수 박물관을 짓고 있을 정도로 열의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 자수 박물관이 올해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20에 국빈들이 방문해 우리문화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자수 전문가로서 정말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의 문화를 이렇게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국가의 지원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언니인 자수예술가 손인숙이 짓는 자수박물관은 모두 개인 부담으로 지어지며 그 어떤 지원도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전수를 받는 자수예술가 손경숙에게도 이렇다 할 지원은 없다.
단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북촌 한옥 마을에서 자수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비용이 지급되는 것뿐이다.
우리 문화를 아름답게 이어가는 예술가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꿋꿋하게 계속 작품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손끝이 그 어느 것보다 더 단단하게 느껴진다.
글_김수진 / 사진_손경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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