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분명히 미술대학이 없었을텐데 미대도 나오지 않은 털복숭이 원시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동물들을 잘 그렸을까 감탄하게 된다.
동굴벽화는 공놀이 하던 어린이가 공을 잃어버려 공이 떨어진 구멍을 뒤지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원시인들에게 예술은 이런 것이라는 예술에 대한 생각이 있었을까?
과연 그들이 자신들이 먹고 자는 동굴공간을 예쁘고 멋진 그림으로 꾸며서 보다 쾌적한 느낌을 갖고자 했을까? 그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림을 그린 동기는 오늘날 우리가 생활 속에서 무의식속에 깔고 있는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어머니는 외국으로 멀리 떠난 딸의 사진을 벽에 걸어놓는다.
딸이 보고 싶어질 때마다 어머니는 사진을 바라보며 위안을 받는다.
심지어 어머니는 마치 딸을 만난 듯이 사진을 쓰다듬기도 한다.
우리가 아무리 발달된 과학기술문명 속에 살아간다고 해도 마음속에는 원시인과 같은 무의식이 숨어있다.
즉 대상과 닮은 그림을 보면 실제 대상을 만난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사 가려고 물건을 포장하면서 신문지를 북북 찢을 때 우리는 께름칙해진다.
왜냐하면 신문지에는 인물사진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동굴 벽에 사슴과 들소를 그린 원시인들이 생각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을 그리면서 그들은 실제동물을 가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던 그들 은 동물들을 보다 잘 사냥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동물들을 그려놓으면 그것들을 보다 잘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림은 일종의 미신이며 마술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BC 이천오백년경 이집트에서는 죽은 왕을 위한 무덤인 피라미드를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이 죽기 이십년 전부터 미리 무덤을 만들어놓았다.
피라미드는 왕의 영혼을 별과 하나로 합일시키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원시인의 동굴벽화이든 피라미드 같은 대 건축이든 그 의미가 멋진 미술품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다른 엉뚱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었다.
“원시인에게 집이 비바람을 피하는 생활도구였듯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주술을 위한 실용적 도구였다.”
그들에게는 예술철학 즉 예술개념이 전혀 없었다.
그림을 선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철학을 가졌다고 볼 수 없듯이 예술을 마술도구로 생각하는 원시인이 예술철학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아예 예술이라는 언어조차도 없었고 의식도 없었다.(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동물
이 선 개념은 없었지만 실제로 선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듯이 이 경우에도 예술개념을 모르지만 그들이 실제로 예술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제작 동기는 다르지만 제작결과를 놓고 볼 때 그들이 제작한 작품은 오늘날 현대적인 예술개념으로 만든 작품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림재료와 그리는 방식도 현대인의 미술제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 실험실의 실험도구가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때로 빼어난 형태와 색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예술적이다!”라고 말하면서 감탄하게 된다.
원시인의 동굴벽화도 마찬가지로 그런 의미에서 예술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뉴스보이 Arts & Culture (http://www.artsn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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