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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Venezia)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쪽. 육지와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길고 긴 다리를 지나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는데 눈부신 햇빛이 대운하(Canal Grande) 위에 쏟아진다. 역 앞 광장에는 택시 타는 곳을 가리키는 푯말이 보인다. 이곳에서 말하는 ‘택시’는 조그만 모터보트이고, ‘시내버스’는 중형버스 보다 조금 작은 배인데 이곳에서는 ‘작은 증기선’이란 뜻으로 바포렛토(vaporetto) 라고 부른다. 역 앞에서 바포렛토를 타고 대운하(Canal Grande)를 따라 베네치아의 심장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산 마르코(San Marco)는 신약성경의 마가복음의 저자 성(聖) 마가의 이탈리아 어식 표기이다. 베네치아를 하늘에서 보면 ‘ㄹ’자를 흘겨 써놓은 것 같은 3.3킬로 미터의 대운하가 도시의 심장부를 휘감아 돌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이 대운하는 도시의 어느 지점에서라도 3백 미터 이내에 있어서 베네치아 교통의 중추신경 역할을 하고 있다. 대운하 양쪽에는 창(窓)과 주랑(柱廊)으로 확 트인 우아한 건물들이 밝게 채색되어 물 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하다. 하늘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신이 창조해 놓은 듯한 베네치아는 환상과 실제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베네치아 음악의 산실, 산 마르코 대성당
산 마르코 광장에는 밝은 햇살이 가득하고 카페 악사들이 연주하는 비발디의 밝은 선율이 바람결에 흩날린다. 광장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국적인 분위기가 흠뻑 느껴지는 비잔틴 양식의 산 마르코 대성당에눈길이 집중된다. 이곳에서 비발디의 아버지는 바이올린 주자로 일했으며 어린 비발디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대성당 내부에 들어선다. 바깥과는 전혀 다른 어두운 공간이 펼쳐진다. 대성당의 평면은 그리스 십자가형이 기본 으로 되어있다. 간단히 말해 평면은 두 개의 동일한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교차하는 형태다. 두 개의 직사각형이 겹치는 곳이 성당의 중심이고 그 위에는 커다란 돔이 올려져있고 그 주위에 네 개의 작은 돔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며 올려져있다. 어두운 실내 공간은 돔 아랫부분에 뚫린 창을 통하여 들어 오는 빛으로 밝혀진다. 위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줄기의 빛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지는 신의 은총처럼 느껴진다. 한편 둥근 곡면의 천장은 모두 찬란한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 되어 있는데, 아무리 미세한 빛이라도 모자이크 면 어디선가 반사되어 반짝인다.
산 마르코 대성당과 광장은 예로부터 베네치아의 문화, 종교, 정치의 중심지로서 베네치아의 중요한 모든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대성당은 음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곳의 음악은 옛날 베네치아 공화국이 국가차원에서 감독을 했으며, 국가는 수준 높은 음악 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대성당의 음악감독이나 오르간 주자, 또는 오케스트라 연주자 자리는 당시 유럽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공간의
묘한 음향효과
때는 1527년, 그러니까 비발디가 태어나기 150여 년 전의 일이다. 산 마르코 대성 당의 음악감독에 플랑드르 출신의 유명한 음악가 아드리안 빌라르트(A. Willaert) 가 초빙되어 왔다. 당시 유럽에서는 플랑드르가 음악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곳 음악가들이 유럽의 여러 궁정에 초빙되 는 것이 상례였다. 플랑드르는 현재의 벨기에 북부지방이지만 당시는 네덜란드 땅으로 영어로는 플란더스(Flanders) 현지 어로는 플람스(Flaams)라고 한다. 네덜 란드나 벨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기후가 별로 좋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정교한 구조의 고딕식 건축이 많다.
중북부유럽의 우중충한 날씨만 봐왔던 빌라르트는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햇빛 찬란한 남국의 하늘과 지중해, 운하 위에 눈부시게 어리는 햇살, 물위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석조건물들, 축제의 장식처럼 아름다운 창(窓), 이국적 정취가 넘쳐 흐르는 산 마르코 성당과 고딕양식인데도 물 위에 떠있는 듯 날렵하고 우아한 도제 (Doge)궁, 심지어 그늘 속에도 찬란한 빛 깔이 숨어 있는 환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고 그만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베네치아의 풍광에 완전히 매료된 그 는 산 마르코 대성당 안에서 들어가서는 입이 벌어졌다. 아니, 입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귀도 번뜩 틔었다. 즉 산 마르코 대성당과 같은 돔의 배열을 가진 내부공간에서 는 아주 묘한 음향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음악은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에 오기 전에 쓴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고딕 건축과 마찬가지로 선율들이 정교하게 엇갈리면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베네치아 에 발을 디디고 나서부터 그의 음악 작법 에는 풍부한 화성 효과가 많이 도입되었으며, 음색의 대비, 음향의 대응 효과 등이 과감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빌라르트의 음악적 감각은 그의 제자인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와 그의 조카 죠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어 산 마르코 대성당의 미사나 축일 을 위해 작곡할 때는 이 성당이 지닌 독특한 내부 공간 구조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아드리안 빌라르트와 그의 제자들은 이곳에서 ‘분리된 합창’(cori spezzati)이라는 형식을 시도했다. 즉, 좌우 양쪽 돔 아래에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합창석과 두 대의 오르간의 선율이 함께 울려 퍼지는 음향의 대응 효과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금빛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된 대성당 안에서 음악을 듣노라면 음 하나 하나가 금빛으로 울리고 음 하나 하나가 은빛으로 대답하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죠반니 가브리엘리의 작품 중에서 <성전에서>(In ecclesiis)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독특한 내부공간구조를 가장 잘 이용한 음악으로 손꼽힌다. 이 곡은 네 명의 독창자, 네 개의 합창단, 바이올린, 세 개의 코넷, 두 개의 트롬본, 오르간으로 연주된다.

이와 같이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시작된 베네치아 악파의 음악은 극적 감흥을 느끼게 하는 기악 음악을통하여 근대적이고 색채적이며 반음계적 화성원리를 개척한 독특한 양식을 확립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베네치아 악파의 음악은 전 유럽에 알려졌다. 특히 죠반니 가브리엘리가 산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있던 1600년대 초에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베네치아로 몰려왔다. 독일의 하인리히 쉬츠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바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산 마르코 대성당은 건축이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좋은 예인 셈이다. 그런데 참 아쉬운 점이 하나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독특한 내부 공간구조를 이용해서 작곡한 곡들은 다른 장소에서 연주될 때는 그 오묘한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생된 음악을 감상할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찬란한 베네치아의 풍광과 산 마르코 대성당의 내부공간을 연상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글·사진_정태남
(tainam@tiscal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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