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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범위도 아주 넓고, 과학 기술의 범위도 너무 넓기 때문에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자칫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일상 속에서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간단히 논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도 있고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예술이 먼저냐 과학 기술이 먼저냐?’를 논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한 논쟁거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몇 가지 경우에는 그 순서가 명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과
영화는 과학 기술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과학 기술의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은 렌즈와 필름이라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비슷한 분야인 미술의 역할도 변화를 겪게 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술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였던 단순히 자연을 모사하는 정도는 사진에게 그 자리를 내 주게 되었고, 미술은 좀 더 내면적인 표현, 사진으로 나타낼 수 없는 분야로의 진출(?)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추상화 등 사진으로 나타낼 수 없는 미술 기법의 등장은 사진에게 중요한 자리를 뺏긴 화가들의 절박한 탈출구였다고 볼 수 있다.

항상 위기는 기회를 가져온다고 했듯이, 사진의 등장으로 미술은 한 차원 높은 현대 미술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미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와 영화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초기 사실적인 표현에 국한되던 사진은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된다. 디지털이란 모든 정보를
‘0’과 ‘1’로 분해해서 저장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원리가 간단해 보이는 디지털 기술은 사진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의 일상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를 비롯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핸드폰 등 여러 IT 기기들은 바로 이 디지털 기술에 의해 탄생한 것들이다.

10년도 넘은 얘기지만 내 동생은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었다. 주말만 되면 사진기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그 때 찍은 사진 몇 장이 아직도 내 동생 집의 거실에 걸려 있다.

그런데 몇 년 지난 후에 내 동생은 취미 활동으로 하던 사진 찍기를 그만 두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이었다. 사실 당시에 사진 전문작가들은 필름을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취미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일단 필름에 들어있는 모든 사진들을 현상소에 맡겨서 인화를 해야 했다. 다음에 그 사진들을 보면서 어느 사진을 골라서 작품으로 만들 것인지를 결정했다. 사진기 구입에 여행 경비에 더하여 필름을 구입하고 찍은 필름들을 모두 인화하자면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일단 카메라에 들어있는 사진들을 모두 인화할 필요 없이 모니터에서 사진들을 확인하고 골라서 인화를 하면 되게 되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화 자체를 할 필요조차 없다. 사진 파일 자체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다가 사용하거나 필요할 때 인화를 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런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사진이라는 분야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손쉬운 IT 기술의 하나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또 다른 장점은 편집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자체를 찍어서 그대로 표현하던 사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 것이다. 사진의 합성이나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의 결합으로 인해 ‘사진 예술’이라는 또 다른 장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진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전문가들은 과학 기술과 결합한 사이아트의 탄생, 즉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표현하는 포토 마이크로그래피, 레이저 등을 이용한 옵티컬 테크닉스, 인간의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모션, 플로우 사진 등의 다양한 분야가 탄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 그 자체가 예술일 수는 없으며, 주체는 항상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에 아날로그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일부러 집어넣는 ‘디지로 그(=디지털+아날로그)’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김송호(공학박사 /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입학사정관 / 저술가 / 강연가 / 헤드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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