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첫시집, [장미농원, 궁궁궁] '좋은책터' 刊
'요즘의 시인들은 잉크에 물을 많이 탄다.'는 괴테의 말은, 이 시대의 시인들에게 적용되는 것 같다. 또 시인 '발레리'의 한탄처럼 '시인은 방안에 있는 직인(職人)이다.'는 말에도 해당하는 것 같다. 어느 시대나 시인은 세상의 중심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세상의 중심이라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데도 요즘 시인들의 시들은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 해서 시인들만의 방언이라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 시인들의 시는 방언 같아서 또 읽는 재미와 해독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고 하겠다. 그냥 쉽게 읽혀도 좋은 시는 분명 좋은 시이나, 또 음미하고 두고 두고 해석해서 뜻을 몰라 쩔쩔 매면서 고민하면서 읽는 시도 좋은 듯 하다.
김헌 시인은 1998년 계간 '시와 사상'의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꼭 10년 만에 낸 첫 시집의 제목은 '장미농원, 궁궁궁'이다. 시인의 표지 안, 통상은 길게도 나열식으로 붙은 시인의 이력은 생략 되어, 어느 곳에 태어나 몇 살인지, 무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력이 시인뿐인 김 헌 시인의 시집을 두 서너번 이상 반복해 읽는다.
푸르디푸른/ 멍 한번 못 벗는/ 천형에 뒤틀린 나무야//몇 백년 꽃피우지 못한 아픔/ 지독한 향기로 만들어/이름을 얻는 나무야//덕수궁 뒷길에서/ 잿물 배인 몸으로/푸른 잎 토하는 나무야//저주를 퍼붓던/아픈 기억 모두 풀어버린/ 그늘이 참 넓은 나무야. <신목>-'전문 인용'
'신목'은 무얼 지칭하는 것일까. 시 속의 화자는 '덕수궁 뒷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나무의 존재에서 '자아'를 발견한다. '천형에 뒤틀린 나무'는 곧 시인의 존재임을 바꾸어 읽어도 상관이 없다. '저주를 퍼붓던', '아픈 기억 모두 풀어버린', 넓은 정신의 그늘을 가지게 된 '신목' 속에 들어가서 나무의 말을 대신 주절주절 읊고 있는 시인의 메세지는 푸르디 푸른 멍을 벗은 존재와의 친자연적인 대화를 이미지화하고 있다.
"등단 한지 10년, 이제야 서랍 안에서 잘그락 거리던, 너를 천착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눈을 두고 버리지도 꽃피우지도 못했던 마른 잎들을 떨어뜨린다. (중략) 처음이자 처음일지도 모를 시집을 묶는다."고 '시인의 말'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이미 고인인 김준오 평론가(부산대학교 교수)는, 김 헌 시인의 시세계를 이렇게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대뜸 "한덩이 쓰레기로 남았다."며 낭비된 삶의 소모 이미지를 말하는 그의 '소각장'은 시상이 연역적이다. 사실상 폐가를 묘사한 '생가'에서는 "잠을 뒤척이는 모과는/ 울퉁불퉁 별을 닮았다."와 같이 자연과 폐품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소비되고 낭비된 삶의 리얼리티를 매우 공감적으로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의 시세계는 '지금 여기'의 구체적 삶의 현장성보다 자아탐구의 형식으로 인간존재의 허무를 탐구하는 형이상적 깊이를 지킨다. 그의 시는 추상성을 띠는 만큼 지적 자유를 <현실이나 사물의 굴레로부터>획득한다. 이 추상성은 '바람'이라는 핵심 이미지에 의존하면서 "이름도 없는 나"('숲에 있네, 없네')에서 환기되듯이 실존의 근거가 '무'(또는 허무)이며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이 '무'를 투시하는 안타까운 표정이 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시론을 남긴 故 김준오 문학평론가의 말씀처럼, 김 헌 시인의 시 속에는, 삶을 쓸모 없이 낭비하고(낭비하지 않으면 안되는)만, 젊은 날의 존재에의 성찰이 시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처럼 김 시인은 '꽃피우지도 못했던 마른 잎들을 떨어뜨린다.'고 곁들여 상재된 '시인의 말'을 빌려 고하고 있다. 허나 이는 시인의 겸사로 읽힌다. 각 시편마다 내 뿜는 '언어의 꽃' 향기는, 독자의 '정신 궁(宮)'을 그윽하게 한다.
마치 깊은 꽃대궁 속에서 뿜어내는 영성의 향기가 시집의 따끈따끈한 페이지마다 낙엽을 태우는 연기처럼 피어나고 있다. '장미 농원, 궁궁궁'에는 '하늘 공원' 외 총 60여편 상재되어 있다.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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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인인 김준오 평론가(부산대학교 교수)는, 김 헌 시인의 시세계를 이렇게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