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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 한옥 문짝에의 한길, 장인 김영일 할아버지
-인터넷으로 세계에 한국의 미, 전통 문짝을 알리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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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아파트 울울한 숲속에 한국 전통한옥 문짝집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나, 시장가는 길이면 의례히 지나치게 되는 길목의 동해남부선의 해운대와 송정 가는 철로변에 오래된 간판을 달고 있는 '영일, 전통한옥 문짝집'.

이 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이름, '영일'을 따와서 지은 영일 전통 한옥 문짝집이란다. 년전에 무수히 지나다니면서도, 관심이 없어서 너무 늦게 발견한 전통 문짝집 안으로 고개를 기웃 대다가, 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편안한 웃음에 끌려 가게 안을 잘 구경하고 사진도 찍은 인연으로, 우리의 한국 전통 문짝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다음에 꼭 들려서 한국 전통 문짝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인삿말처럼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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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할아버지는 평생 한국 전통 문짝 47년의 세월을 걸어오신 장인이시다. 그러나 '영일 전통 한옥 문짝 집'은 곧 재개발 공사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아직 어디로 가게를 이사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하신다. 한참 더 일할 나이이니 가게는 계속 해야 한다고 말씀 하시면서 약간 난감한 얼굴을 하시며, 그러나 힘주어 말씀하신다.

"난 솔직히 국민학교(요즘의 초등학교)을 나왔소. 그러나 인터넷을 배워 앞으로 세계 속의 한국전통 문짝에 대한 소개와 정보 등 많이 알리고 싶소. 이 나이에 좀 무리인가 싶기도 하오만...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지 않을까 싶소. 허허허.."

목공소 안에는 방금 문짝을 만들고 난 모래밥 같은 나무 톱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가게 안에는 막 만든 연패와 다탁과 나무 향기 나는 아름다운 문짝들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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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아이디어로 만들었다는 빈 가스통 난로가 매우 신기했다. 헌 쇠의자를 나무 의자로 만들어 놓은 것도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셨다. 가게 안은 어수선하지만, 나무톱들도 간지런하게 꽂혀 있고, 할아버지의 손이 많이 가는 일감들이 구석구석 쌓여 있었다. 아직까지 겨울 난로가 놓여진 가게 안의 스레이트 지붕도 난로처럼 태양열을 훅훅 뿜어내는데도, 할아버지는 별로 더위도 안 타시는지 열심히 문짝의 마지막 공정의 대패질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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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문짝 만드는 기술은 언제부터 배우셨나요 ?" 하고 물으니, "6. 25 피난 내려와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13살 때부터 문짝 배우는 기술을 배웠소. 문짝 배우기 전에는 안해 본 장사도 별로 없어요. 아스케키 장수, 신문 배달 등 배가 고파서 미군부대에 나오는 부대찌게 같은 걸로 바닷가에 나와 해초 따위로 허기를 채웠지. 그때 모두들 가난했지만, 그래도 피난 내려와서 아버지를 잃고 혼자 된 어머니와 정말 많이도 배가 고파서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문짝 기술을 배웠다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힘든 문짝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서 혼자서 일을 한지 오래 되었다오. " 하고 말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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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멋. 전통 연패  


 
할아버지가 만든 문짝들은 못 하나 박히지 않은 나무 결과 나무 결이 만나서 나무의 무늬가 되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목공 예술품이다. 할아버지는 나무는 영혼이 있어서, 잘 다루고 아껴쓰면 천년 만년도 오래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 하셨다. 그때문에 나무로 만든 제품은 함부로 흠을 만들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씀 하신다.

여러가지 문양으로 된 우리 전통 한식 문짝들의 문양을 구경하다보니, 더위도 잊고 뻘뻘 땀을 흘리며 일하는 할아버지 모습에 도취되어서 나도 문짝 하나 짜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옛날 문은 거의 재료가 나무이다.

한그루 나무의 영혼이 깃든, 문(門) 은 한자어이다. 국어로는 '돌'이 바로 문의 고어이다. 문(門)은 본능을 표상하는 '피'와 신성을 표상하는, '빛'이 동시에 넘치는 세계로 들려는, 심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 새로운 삶의 길을 상징하며, 내면 세계와의 만남을 상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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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고 싶은 문이 있다면, 지옥의 문이다.-'팔만대장경' 중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쉴 수 있는 집. 그런 가옥의 한옥은 문이 내부와 외부를 연결 하는 통로이면서도, 그 문은 닫혀 있어도 열려 있는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현대 건물의 현관문은 어떠한가. 창문마다 흉한 철창을 매달아 외부의 접근을 방지한다. 그러나 한옥의 문은 이러한 단절의 문이 아니라, 통로와 연결과 열린 공간의 입구로서 존재한다. 한옥의 매력은 역시 높은 품격의 전통문짝에서 제멋을 낸다.

그러나 특별한 도시 외에는 전통 가옥은 도심에 찾아 볼 수 없다. 점점 전통문짝 가게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동네 아파트 숲 속에 유일하게 하늘로 트인 통로처럼. 기찻길 건널목에 자리했던, 영일 전통 문짝 집, 그 한결 같은 오십년 세월의 장인의 가게 문이 닫히고 말 것인가.

그러나 영일 전통 문짝집은 사라져도, 할아버지는 그동안 당신이 만든 문짝들은 예술 작품이라고 자신하신다. 손가락 하나 잘려져 나간 아픔을 견디며, 반세기의 외길동안 아마 한가마니 쯤의 나무 톱밥을 먹었을 거라시는, 오직 전통 한옥 문짝에의 한길로 걸어온 할아버지의 장인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네티즌 의견이 살아있는 신문
뉴스보이 타우루스 기자
www.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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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1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새로움의 힘

인터팬 2008/06/30 16:33


새로움의 힘



새로움의 힘! 새로움이란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이것은 바로 창조정신이다. 창조정신이란 생명력의 원천이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와 패션계의 예술가이며, 프랑스의 복식 디자이너 샤넬(Gabrielle Chanel, 1883~1971)은 새로운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 위대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들을 살펴보면, 발자크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스타일과 차별성이 있었다. 그는 물질적 욕심과 명예욕이 대단했으며 거짓말도 많이 하고 아주 허황된 삶을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러나 그는 방황하는 과정에서도 틈틈이 많은 글을 남겼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제자들은 그를 인명사전의 한 모델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의 작품의 밑거름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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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제1문 광장에서 이 지역을 고을을 지키고 있는 장승들 ⓒ김형출  
 

그는 학식 있음을 자랑하고 거드름 피우는 것을 싫어하며 사실주의의 대가로서 새로움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위인이다. 그리고 샤넬은 발자크와는 또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위인이다. 그는 어릴 때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에서 입었던 그녀의 옷은 개인성이 억압된 검은색이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검은색 옷은 상복이었다. 그녀는 늘 상복을 입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불우했던 환경은 그녀에게 새로움의 힘을 줄 수 있었다. ‘샤넬’이란 상표는 오늘날, 많은 여성이 가장 선망하는 브랜드가 됐다. 그는 검은색 상복을 멋쟁이 일상복으로 만들었으며, 유럽 대륙의 색깔 기호를 파괴하기까지 했다. 가방 등 장신구류에서는 그 시대에 역행하는 새로움의 힘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위대한 위인들의 새로움의 힘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고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 중 가장 우선시돼야 할 요소다.

만약 당신이 멋진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새로움과 같은 창의적인 발상과 온건한 사유(思惟)가 필요하며 그 시대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신은 새로움의 힘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움의 발견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작은 발견을 찾고자 한다면 우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 이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는 매사를 좋게만 보려는 플러스적 생각이고, 부정적인 사고는 매사를 소극적이고 비관적으로만 보려는 마이너스적 생각이다. 마이너스적 생각을 지닌 사람은 매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움의 힘을 발휘한 위대한 위인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상상력을 긍정적인 사고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훌륭한 리더는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자신감을 가질 때만이 새로움의 힘은 발견될 수 있고 발휘될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도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새로움의 힘을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김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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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uydiscounthandbags.org/ BlogIcon ww 2011/12/21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 최대규모로 프랑스 왕실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다.



봉선화꽃물이 첫눈 올때까지 남아 있으면...
우리꽃, 울밑에 선 봉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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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눈이 내릴 때까지 봉선화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봉선화는 장독대와 울타리 밑에 기대어 피는 꽃이다. 이 주홍빛 꽃빛을 내 뿜는 봉선화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여 있다. 아주 먼 옛날 꿈에 선녀(仙女)로부터 봉황(鳳凰)을 받는 태몽을 꾼 후에 낳은 딸이라 해서 봉선(鳳仙)이라고 지었는데, 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거문고 연주 솜씨가 뛰어나 그 소문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그 임금님은 봉선의 거문고 연주에 늘 행복했다. 그러나 봉선은 깊은 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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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 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 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이 예 있나니
화창한 봄 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 <울밑에선 봉선화> 김형준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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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도 할머니의 텃밭에는, 봉선화 피었지만...  
 
봉선은 마지막 힘을 다해 거문고를 연주하다가 손끝에서 피가 나오는데도 연주는 그치지 않아, 임금님이 손수 봉선의 손가락을 천으로 감싸 주었으나 결국 봉선은 죽는다. 그 봉선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봉선화라고 한다.

속설에는 봉선화 물 들인 손톱 끝에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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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동네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텃밭에는 봉선화, 분꽃, 오이꽃 등이 피었다. 나도 봉선화 한포기 얻어와 화분에 심었다. 봉선화 꽃물 들이던 유년의 추억으로, 햇볕이 귀한 아파트 베란다에 두었다. 허나 봉선화는 장독대가 나란히 있는 마당 안 꽃밭에서 잘 클 것이다. 할머니의 손길로 아기자기 가꾼 유월의 채마밭에는 벌써 고추가 보기 좋게 열렸다.

주름살이 해마다 하나 둘 늘어나는 할머니의 가슴 속에 어쩜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할머니처럼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봉선화꽃물처럼 남아 있는 첫 사랑이 물어보지 않아도 있을 듯 하다. 그래서 해마다 봉선화꽃씨를 빠트리지 않고 뿌려 봉선화를 키우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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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란다에서 잘 클 수 있을까 ?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riri2sky@h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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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heapdrdrebeatsshop.com/ BlogIcon ww 2011/12/21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선은 마지막 힘을 다해 거문고를 연주하다가 손끝에서 피가 나오는데도 연주는 그치지 않아, 임금님이 손수 봉선의 손가락을 천으로 감싸 주었으나 결국 봉선은 죽는다. 그 봉선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봉선화라고 한다.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긴 어렵다"


신화에서 성은 국조나 영웅의 절대적 능력과 신성함의 표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대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시설이고, 동래 옛읍성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의 의지가 서려있는 성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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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를 막기 위한 동래읍성

성은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고, 이 성을 지키는 것은 나라를 지키는 일과 같다. 동래 읍성은 고려 현종 12년(1021)에 왜구의 노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현재의 부산지방 병무청을 중심으로 수영구 망미동 일대에 고쳐 쌓았던 성이다. 동래는 기원전 1세기, 삼한시대 독로국(또는 장산국, 거칠산국)으로 건국되어, 신라시대 경덕왕 16년 동래군이 되었다.

1731년 축성한 동래읍성의 둘레는 17,291척(약 3.8Km), 높이는 17척(약 5.1m)이다. 읍성 안에는 우물 10개와 못이 있었고, 자연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평산성이며, 북쪽과 동쪽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남쪽과 서쪽은 열려 있다. 정면인 남문이 가장 중요한 출입문이다. 남문을 비롯해서 서문, 암문, 북문, 인생문, 동문의 6개가 있다.

각 문에는 문루가 있었는데, 동문에는 지희루, 서문에는 심성루, 남문에는 무우루, 암문에는 은일루가 있었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을 두고, 문은 앞의 세병문과 뒤의 주조문이 있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서문·동문·북문 등 다른 문에는 성문 보호를 위해 옹성을 부설하였고 장대, 망루 및 15개소의 보루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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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눈물이 얼룩진 역사의 생생한 현장

동래읍성은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성이다. 고려 말 우왕 13년(1387)에 수축된 것으로 보이는, 동래읍성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위시한 모든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장렬한 전투를 벌였던 임란초기의 최대 격전지이다.

이후 부분 보수된 성을 1731년(영조 7) 정언섭 동래부사가 조선의 관문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훨씬 규모를 크게 고쳐 쌓았는데, 이 성이 현재 흔적으로 남아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일제 때 '시가지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다. 부산시에서는 이를 보수·복원할 계획이며 문화유적지를 원위치대로 보존해 교육적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송상현 동래부사, "싸워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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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전쟁에 지면, 성은 함락되는데, 입성한 적은 제일 먼저 성벽을 무너뜨린다. 임진왜란 때의 송상현 동래부사는 왜구가 밀어닥치면서 커다란 나무판에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려달라"는 글을 써서 세우자,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나무판에 써서 적에게 던지고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 이후 군사의 수가 턱없이 적어 성이 함락당하자, 관복으로 갈아입고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절한 후 단정히 끓어 앉아 죽임을 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전기 동래읍성의 모습을 상세히 그린 '동래부순절도'는 현재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당시 조선군과 왜군의 치열했던 교전 상황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동래 옛읍성은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 철거되었다. 이후 동쪽부터 북쪽의 산등성이에 이르는, 성의 일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전해 오다가, 1979년부터 복원되었다.

1731년(영조 7) 증축 이전 조선전기 때 읍성의 둘레는 3090척(약 657m), 높이는 13척(약 3.9m)이었다. 현재는 그 당시 읍성 규모의 약 1/6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전기엔 기초 다짐석과 같은 크기의 돌을 3~4단 정도 허튼 쌓기를 하였는데 반해, 조선후기엔 가공기술의 발달로 수직에 가깝게 쌓았다. 산지쪽의 성은 바깥쪽만 돌로 쌓고, 안쪽은 지형에 따라 흙을 조금 파내고 잡석이나 판축 흙다짐으로 채워 놓았다.


성밟기는 성을 보수하기 위해 시작 되다

성터 성밟기는 성을 보수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민속신앙으로 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옛날 부녀자들은 각자 목침덩이만한 돌을 하나씩 이고 성의 왼쪽에서 출발해서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 하며 세 바퀴 돌면 죽었을 때 저승길이 환히 트여 극락 세계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국가 기원과 개인적인 축원의 '성밟기'를 하던, 그 옛날 부녀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옛 동래 읍성을 빙빙 돌다보니,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려 있다. 동래 읍성 역사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휴관한다.

사람은 가고
성터는 남아
무상함이 이리도 새삼스럽다
무너진 성돌 위에 푸른 이끼
세월이 남기고 간 슬픈 얘기여,
'접동새'-'황금찬'

동래읍성 역사관 가는 길/ 부산 동래구 복천동 1-28번지이며, 동래지하철 역 혹은 명륜동 역에서 하차하여, 복산동 동사무소 곁이나 동래문화회관 등을 찾으면 쉽다.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riri2sky@h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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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인 남문이 가장 중요한 출입문이다. 남문을 비롯해서 서문, 암문, 북문, 인생문, 동문의 6개가 있다.



진주 맹우들의 '싸움의 기술'에서 한 수 배우다 !
[진주소싸움대회]

진주 소싸움


소는 12지에서 둘째 번에 해당한다. 소는 인간의 희생용만 아니다. 점술용으로도 이용되고, 소를 신격화 시켜 종교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진주 소싸움은, 일제 시대 때 제일 성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진주 소싸움의 역사는,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되어 고려 말부터 진주를 중심으로 자생한 고유 민속놀이인 것이다. 해서 진주 소싸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싸움 대회. 진주의 독특한 투우라 하여 우편국에서 발행한 우표로 사용된 바도 있고, 1986년 세계 126개국에 제공되는, 'SEOUL'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진주소싸움이 소개되어, 진주투우사진집이 현재 프랑스 루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1934년 우편국에서 사용한, '촉석루와 소싸움'의 우표가 발행된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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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소싸움 대회는 해마다 5월, 10월에 전국 규모의 대회가 년 2회 (논개제, 개천예술제 기간중) 열리고, 주말 소싸움 대회는,  매년 3월-11월 (매주 토요일 오후1시 ~ 6시)에 열린다.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은, 얼마전 까지는 진주 시내에 소재했으나, 지금은 진양호 후문에 자리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옛날에는 진주의 "큰판(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투우가 벌어지는 대회시간에는 싸움소들이 일으킨 뿌연 모래 먼지가 백사장을 뒤덮었으며,수만 군중의 함성은 하늘을 메아리 쳤다고 한다. 더구나 수백개의 차일이 강변의 백사장을 온통 뒤덮었으며, 대회를 즐기기 위해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인해, 인동 양조장술이 동이 났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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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싸움이라고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장터에서 서너번 구경한 것이 고작이라, 소싸움을 구경하는 법을 제대로 몰라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진주 소싸움 구경 가기 전에 대충 '소싸움의 기술'을 공부하고 관람하니 휠씬 소싸움의 구경이 재미 났다.

사람이사는 세상이나, 맹우들의 사는 법이나 비슷비슷한 듯 느껴지는 소싸움대회, 이 소 싸움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소들도 싸움의 기술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소싸움 기술에는 '들치기' , '머리치기','목치기','뿔치기', '옆치기', '뿔걸기','밀치기', '연타' 등이 있다.

가장 기본술은, '머리치기'인데 정면에서 상대 소의 머리를 부딪치며 공격하는 기술로 소싸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목치기'는 상대 소의 틈을 노려 목부분을 공략하는 것으로 싸움소끼리의 신경전이 펼쳐지면서 이어지는 공격기술이다. 무엇보다 화일라이트는 '뿔치기'이다.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뿔을 치며, 공격하는 기술로써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상대를 제압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싸움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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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소싸움 대회의 캐릭터 맹우에 대한 일화도 무척 재미나다. '맹우'는 일제시대에 성행했던 전통 진주 소싸움에서 명성을 날린 싸움소의 이름인데, 소싸움을 하던 중 뿔이 부러지는 극한 상황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싸움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맹우의 힘찬 모습과 함께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흰 옷을 입혀, 그날의 외침에 항거한 백의민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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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서는 소는 신의 제사상에 바쳐지는 제물이다. 칠성굿이나 씻김굿에 "소를 잡고 잔치를 시작했다"거나, "소를 잡아 성주 조상 위하여 놓고"등과 같은 사설이 나온다. 동해안 별신굿의 하나인 범굿에서도 소가 제물로 쓰인다. 굿이 끝난 후 범이 사람 대신 쇠머리를 가져가라고 뒷산에 묻는다. 한자의 고할 고(告)고 소 우(牛)에 입 구(口)를 더한 것으로, 신령에게 소를 바쳐 소원을 빈다는 뜻이다.

'우주'들이 싸움 소들의 싸움을 흥정하듯이 붙이지만, 대전하는 맹우들은 매우 지친 듯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장기간 신경전을 벌였다. 관객석에서는 더욱 함성을 지르지만, 맹우들은 이에 끄떡하지 않고 서로의 약점을 찾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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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진주의 대표적인 축제, 진주 소싸움대회는 해마다 년 2회 개최(논개제, 개천예술제)하고 있으며, 특히 10월 개천예술제 기간중에 개최되는 소싸움대회는 전국에서 수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진주의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각광받고있다.

또한 진주시에서는 소싸움의 옛명성을 되찾고 진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진양호 제2매표소 앞 50,648㎡ 부지위에 3000석 규목의 원형경기장인 진주전통소싸움 경기장을 건립하여 2006년4월부터 매년 3월 - 11월까지 매주 토요상설 소싸움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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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uystarwarscredit.com/ BlogIcon ww 2011/12/21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객석에서는 더욱 함성을 지르지만, 맹우들은 이에 끄떡하지 않고 서로의 약점을 찾는 듯 보였다.



친구 따라, 등지게 지고 나서는 '구포장날'
[동행 취재]정애자 사진 작가와 함께 다시 '구포시장' 속으로


부산 구포장터의 역사는 길다. 17세기부터 낙동강 유역 농민들과 남해와 동해안 어민들이, 마차와 수레나 노새에 싣고 온 곡물이나 가축, 소금, 수공업품 등을 사고 파는 장소로 유명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하기 이전까지 물자의 중요한 집산지이자 교역지로 큰 역할을 해온 구포장터는 1919년 3월 29일 1200여명의 시장 상인, 노동자, 농민이 (당시 구포시장 일원 : 지금의 만세로 일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현장이다.

구포시장 입구와 쌈지공원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야채와 과일거리가 나온다. 무려 100여개 이상의 점포가 몰려 있어, 사람들이 붐비는 오후시각이면 미아가 되기 쉽다. 현대식 백화점과 마트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훈훈한 인정과 파격적인 가격, 흥정을 하는 재미가 주부들이 구포장을 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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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포시장,(사진/정애자)  

구수한 입담을 가진 초로의 아낙들에게서 고향의 모정을 느낄 수 있는 구포시장. 거친 부산사투리 속에서 군밤 같은 따뜻한 마음을 만난다. 이 세상 필요한 것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만물시장이, 구포시장이다. 야채와 과일, 반찬 재료인 채소, 젓갈, 족발, 어묵, 생선, 약초, 화초 등 가짓수를 손으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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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포명물, 잡화품 파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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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는 게 없는 구포 시장의 의류가게 지나며  


 
야채거리를 지나면 수산물 거리가 나온다. 수산물 거리에는 아침 저녁 식탁에 오르는 신선한 수산물과 해산물, 건어물 등이 넘쳐난다. 부산 강서지역과 가덕도 진해 등 산지에서 나온 싱싱한 농산물과 어물들은 어디 내놔도 상품(上品)들이다.


수산물 거리에는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과 떡, 죽, 구포국수, 국밥 집들이 즐비하다. 그 중간지점에 있는 의류거리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옷을 싼 가격에 골라잡아 살 수 있다. 고급 샹데리아 불빛 아래선 비싼 옷들이 무색하다. 잘만 골라잡으면 누구나 명동 신사, 명동 숙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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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물시장, 구포시장, 우리의 정겨운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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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공원 입구에서 오른쪽 골목에 있는 약재. 약초거리에는 20여개의 점포가 줄지어 있어 진한 약초향이 멀리서부터 진동한다. 이곳에는 뱀, 구기자, 인진쑥, 하늘수박, 뽕잎, 가시오가피, 두릅, 결명자 등 많은 종류의 약재와 약초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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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이 그리우면 구포장에 간다  

5일장이 서는 날은 3일과 8일이다. 장날이 되면 사람의 모습만큼 다양하고 개성적인 상품이 어우러진 난전과 좌판이 만들어진다. 상설시장 뿐 아니라 경남 김해와 양산, 밀양, 창원, 경북 등지에서 무려 4000-5000명의 상인들이 갖고 온 농산물, 수산물, 해산물, 공산품, 일용품, 잡화 등 때문에 빈 자리가 없다. 영국속담처럼 시장바닥에 풀이 돋을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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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이 되면 부산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장을 보러 나온다. 무려 2만여명의 유동인구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기서는 농촌에서 키운 우리나라 순종 진도개며 삽살개도 만나볼 수 있다. 상인들이 꼭 아버지, 어머니 같은 농어민들이라 흥정에서 정이 들고 다시 단골까지 생겨 찾게 된다. 각자 정성들여 만든 빗자루며 대죽제품까지 난전에 늘어놓고 내다팔기도 해, 옛날 시골장터의 훈훈한 인정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구포장의 명물이 되어가는 잡화 팔이 할아버지의 해학적인 모습과 마주치면 절로 지갑에서 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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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과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구포장터를 헤매다 보면, 마치 옛날 시골장터에 온 듯이 고답적이고 푸근한 인정이 흐르는 풍경 속에 시간을 잃는다. 구포상설시장에는 850여개 점포가 있다. 음식점, 잡화는 물론 특화된 상품만을 파는 야채와 과일거리, 수산물 거리, 약재 거리, 의류거리 등 그야말로 겨레의 만물장터다.

구포장이 서지 않는 다른 날에도 구포시장을 찾으면 야채, 과일거리, 수산물거리, 의류거리, 약재, 약초거리에서는 재래시장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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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개된 대리천을 중심으로 한 거리는 닭, 개, 토끼, 고양이, 염소 등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다. 구포시장 활성화를 위해 구포시장 상인번영회는 구포시장의 번영화에 노력하고 있다. 천년 시장의 좌판과 난전의 정겨운 5일장의 풍경은 그리운 옛날이 생각나는 절로 발걸음이 가는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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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포장 가는 길- 승용차 혹은 지하철 : 부산 지하철 2호선 3호선 덕천역(1번 출구)에서 2-3분만 표지만 보고 내려오면 된다.- 시내버스 : 구포시장 또는 덕천로타리에서 내려 2-3 분만 걸으면 된다- 기차 : 경부선 열차를 타고 구포역에 내려 덕천로타리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구포시장 입구인 쌈지공원에 내릴 수 있다.

사진을 찍은 정애자씨는,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20년동안 순수작품활동과 병행, 부산지역문화의 전선에서 발로 뛰는 작가이다. 2000년도 < 관점 21-게릴라 > 및 < 열린시대 >  등 프리랜서 사진기자 활동과 겸임하면서, 계간 < 예술부산 > 사진기자로 일한 바 있다.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riri2sky@h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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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구미 금오산을 와불산으로 부르는 까닭은?

    Tracked from 이창우(金井山)의 근교산 2008/06/19 19:14  삭제

    *금오산 정상이 이마로 그아래 눈썹 눈 오똑한 코, 악간벌린 입이 뚜렷하다* 흔히 88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거창 휴계소를 지나 가조에서 남쪽으로 쳐다보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모습의 산, 즉 미녀봉이 있다. 구미에는 그 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누워 있는 부처님 즉 와불산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부처님의 모습으로 산덩어리 전체가 부처님의 모습이니 기네스 북 감일것이다. 칠곡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상에서 보면 구미의 금오산이 꼭 사람이..

  2. Subject: 남항대교의 밤과 낮

    Tracked from 이창우(金井山)의 근교산 2008/06/19 19:14  삭제

    1997년 10월에 착공을 하여 10년만에 영도와 송도를 있는 다리로 이번 6월30일 준공을 눈앞에 둔 남항대교 야경입니다. 현재 야간 조명을 설치하여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상판은 푸른색을 넣어 조명의 색상을 조절하였어며 좌우로는 바둑판 모양의 사각으로 조명을 처리하였습니다. 다른 다리와 달리 남항대교는 인도를 설치하여 시민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남항의 중간에서 자갈치를 바라볼 수 있어며 망망대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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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uydiscounthandbags.org/ BlogIcon ww 2011/12/27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의 스포츠 - 2011.12.27] 박주영, 박지성, 지동원, 아시아 고교야구 최강전, 남자프로농구, 남자프로배구, 여자프로배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낭비된 삶을 환기하는 시의 목소리 
김헌의 첫시집, [장미농원, 궁궁궁] '좋은책터'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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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농원, 궁궁궁'김헌 시집  


 
'요즘의 시인들은 잉크에 물을 많이 탄다.'는 괴테의 말은, 이 시대의 시인들에게 적용되는 것 같다.  또 시인 '발레리'의 한탄처럼 '시인은 방안에 있는 직인(職人)이다.'는 말에도 해당하는 것 같다. 어느 시대나 시인은 세상의 중심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세상의 중심이라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데도 요즘 시인들의 시들은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 해서 시인들만의 방언이라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 시인들의 시는 방언 같아서 또 읽는 재미와 해독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고 하겠다. 그냥 쉽게 읽혀도 좋은 시는 분명 좋은 시이나, 또 음미하고 두고 두고 해석해서 뜻을 몰라 쩔쩔 매면서 고민하면서 읽는 시도 좋은 듯 하다.

김헌 시인은 1998년 계간 '시와 사상'의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꼭 10년 만에 낸 첫 시집의 제목은 '장미농원, 궁궁궁'이다. 시인의 표지 안, 통상은 길게도 나열식으로 붙은 시인의 이력은 생략 되어, 어느 곳에 태어나 몇 살인지, 무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력이 시인뿐인 김 헌 시인의 시집을 두 서너번 이상 반복해 읽는다.

푸르디푸른/ 멍 한번 못 벗는/ 천형에 뒤틀린 나무야//몇 백년 꽃피우지 못한 아픔/ 지독한 향기로 만들어/이름을 얻는 나무야//덕수궁 뒷길에서/ 잿물 배인 몸으로/푸른 잎 토하는 나무야//저주를 퍼붓던/아픈 기억 모두 풀어버린/ 그늘이 참 넓은 나무야. <신목>-'전문 인용'

 '신목'은 무얼 지칭하는 것일까. 시 속의 화자는 '덕수궁 뒷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나무의 존재에서 '자아'를 발견한다. '천형에 뒤틀린 나무'는 곧 시인의 존재임을 바꾸어 읽어도 상관이 없다. '저주를 퍼붓던', '아픈 기억 모두 풀어버린', 넓은 정신의 그늘을 가지게 된 '신목' 속에 들어가서 나무의 말을 대신 주절주절 읊고 있는 시인의 메세지는 푸르디 푸른 멍을 벗은 존재와의 친자연적인 대화를 이미지화하고 있다.

"등단 한지 10년, 이제야 서랍 안에서 잘그락 거리던, 너를 천착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눈을 두고 버리지도 꽃피우지도 못했던 마른 잎들을 떨어뜨린다. (중략) 처음이자 처음일지도 모를 시집을 묶는다."고 '시인의 말'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이미 고인인 김준오 평론가(부산대학교 교수)는, 김 헌 시인의 시세계를 이렇게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대뜸 "한덩이 쓰레기로 남았다."며 낭비된 삶의 소모 이미지를 말하는 그의 '소각장'은 시상이 연역적이다. 사실상 폐가를 묘사한 '생가'에서는 "잠을 뒤척이는 모과는/ 울퉁불퉁 별을 닮았다."와 같이 자연과 폐품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소비되고 낭비된 삶의 리얼리티를 매우 공감적으로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의 시세계는 '지금 여기'의 구체적 삶의 현장성보다 자아탐구의 형식으로 인간존재의 허무를 탐구하는 형이상적 깊이를 지킨다. 그의 시는 추상성을 띠는 만큼 지적 자유를 <현실이나 사물의 굴레로부터>획득한다. 이 추상성은 '바람'이라는 핵심 이미지에 의존하면서 "이름도 없는 나"('숲에 있네, 없네')에서 환기되듯이 실존의 근거가 '무'(또는 허무)이며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이 '무'를 투시하는 안타까운 표정이 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시론을 남긴 故 김준오 문학평론가의 말씀처럼, 김 헌 시인의 시 속에는, 삶을 쓸모 없이 낭비하고(낭비하지 않으면 안되는)만, 젊은 날의 존재에의 성찰이 시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처럼 김 시인은  '꽃피우지도 못했던 마른 잎들을 떨어뜨린다.'고 곁들여 상재된 '시인의 말'을 빌려 고하고 있다. 허나 이는 시인의 겸사로 읽힌다. 각 시편마다 내 뿜는 '언어의 꽃' 향기는, 독자의 '정신 궁(宮)'을 그윽하게 한다.

마치 깊은 꽃대궁 속에서 뿜어내는 영성의 향기가 시집의 따끈따끈한 페이지마다 낙엽을 태우는 연기처럼 피어나고 있다.  '장미 농원, 궁궁궁'에는 '하늘 공원' 외 총 60여편 상재되어 있다.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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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uystarwarscredit.com/ BlogIcon ww 2011/12/21 1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고인인 김준오 평론가(부산대학교 교수)는, 김 헌 시인의 시세계를 이렇게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남다른 그녀의 사랑 
신이 내린 에이스 <무림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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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2시 서울 용산 CGV에서 <무림여대생>(제작: 영화사파랑새, 지영준)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절대고수들의 무림이 존재하는 2008년 서울. 무림의 4대 장로 중 반탕강기의 고수 갑상의 오동딸 소희(신민아 분)는 차에 받쳐도, 망치가 머리위로 떨어져도, 소주를 사발 채 마셔도 이상무다. 무림의 최고 기대주로 무럭무럭 자라 아리따운 여대생이 되던 그 해, 무술 연마가 인생 최고의 낙인 줄 알았던 그녀에게 봄바람을 타고 사랑이 찾아온다.

이 날 시사회가 끝난 후 마련된 간담회에서 신민아, 온주완, 유건 그리고 곽재용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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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되 보인다는 질문에 신민아는 “영화를 촬영하던 때가 2년 전이다"며, "그때가 약간 더 통통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후 또다른 작품인 <고고70> 때문에 살을 뺐다"며, "약간 성숙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신민아는  두 편의 영화에 캐스팅된것에 대해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행운이 있었던 것 같다"며, "영화를 계속 찍게 되고 행운의 시기인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 행운으로 <무림여대생>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어려웠던 점에 대해 신민아는 "사실 극 초반에는 많이 부담이 됐다"며, "혼자 극을 이끌어가는 부분도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기존의 연기와 다른 것, 몸쓰는 거 등 많은 고민을 했다"며, "하지만 감독님이 배우 안에 있는 캐릭터를 뽑으려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한, "오히려 부담감을 가졌던 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며, "좀 더 감독님 옆에 있을걸 그랬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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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녀를 짝사랑하는 역을 맡은 유건은 “우리 어머니가 임예진 선생님을 닮았다"며, "선생님께서 심적으로도 편안하게 해주셔서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건은 키스신에 대해 유건은 “연상녀를 좋아하려면 이 정도는 할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연상녀를 사랑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극중 아이스하키를 타는 것에 대해 유건은 “와이어도 한번 안타고 두 분 앞에서 힘든 걸 꼽으라면 할 말이 없다"며, “그러나 당시에 몇 시간씩 스케이트 타면 힘들어 발이 아프다고 엄살도 부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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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신이 많은 것에 대해 온주완은 "촬영 3개월 전부터 신민아와 연습했다"며, "액션신이 많아 힘든 부분이 많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온주완은 에피소드에 대해 "액션연기를 찍으며 제주도 한의원에서 살다시피했다"고 전했다.

영화 <무림여대생>은 오는 26일 개봉한다.  


<인터팬> 영화처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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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heapdrdrebeatsshop.com/ BlogIcon ww 2011/12/27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행 취재]정애자 사진 작가와 함께 다시 '구포시장' 속으로


    부산 구포장터의 역사는 길다. 17세기부터 낙동강 유역 농민들과 남해와 동해안 어민들이, 마차와 수레나 노새에 싣고 온 곡물이나 가축, 소금, 수공업품 등을 사고 파는 장소로 유명했다



'환경무용'으로 춤 역사를 새로 쓰다
[이 시대의 참 춤꾼] 정귀인의 춤 세계와 만나다


예술의 관심사는 결국 자연회귀이다. 춤은 본질적으로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신념으로 청춘을 바치고 있는 춤꾼 정귀인의 이데올로기는 자연주의. 인본주의의 추구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복원에 근저를 두고 있다. 정귀인은 <동동>을 통해 파도의 역동적 에너지의 이미지들을, 인간의 기(氣)의 변화처럼 심미적으로 형상화해 냈다. 그는 <토우> <어머니의 등> 등을 통해 우주의 오묘한 섭리들을 추구해 왔는데, 특히 <어머니의 등>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한국의 어머니들의 파란많고 뼈저린 고통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런 작업들은 그의 ‘환경무용’의  자연복원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고, 썩어가는 온천천에서 고기를 낚는 안무 작업들은 그 어떤 큰 캠페인보다 설득력 있었다. 그의 작업 여정들은 이렇게  인간에 대한, 모성 회귀의 자연에 대한 진실 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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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으로 철학을 하고, 춤으로 시를 쓰는...이 시대의 참 춤꾼 정귀인.  


 

그가 살고 있는 동네는 바닷가이다. 바다가 그림같은 동네에서 그는 파도처럼 힘이 있는 역동적인 춤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는 바다를 까뮈처럼 좋아한다. <동동>은 그가 살고 있는 푸른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봄바다에서 여름바다로 바뀌고 있는 광안리의 바닷가. 바다를 보면서 물비늘처럼 퍼덕이는 몸의 언어를 생각한다. 그의 춤은 그래서일까. 늘 바다처럼 싱싱하다. 그는 위대한 자연의 춤앞에서 자연만큼 힘이 있는 몸의 언어를 꿈꾼다.

자연의 詩는 춤이다

정귀인은 바다만큼 다양한 삶의 바다, 영화의 바다를 좋아한다. 음악의 바다도 좋아한다. 사진의 바다도 좋아한다. 다양한 예술 바다를 수용하면서, 그는 항상 춤과의 접목을 생각하고, 어두운 영화관에서도 춤을 생각하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늘 춤을 생각한다. 한 장의 힘든 역사의 사진 앞에서는 더욱 고통스러운 철학보다 깊은 사유의 춤을 생각한다. 그는 몸으로 시를 쓰는 춤꾼이다. 그는 말한다. 그에게 자연의 모든 것, 삶의 모든 것이 춤이라고. 그에게 춤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그의 작품은 대부분은 가볍게 감상하는 춤으로는 약간은 무겁다. 마치 젖은 날개의 나비의 춤처럼.

“<어머니의 등>은 영화 < 쉰들러 리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어느날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한편의 영화가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고, 지난한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데, 춤을 추는 나는 뭔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나도 예술가라면,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 하나쯤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자각이 불처럼 가슴에 닿더군요. ”

 <어머니의 등>은 이렇게,  유태인들의 모국의 아픔을 연상하면서  탄생된 작품이다. 역시 <토우>도 같은 경우다.

 “어느날 우중에 경주국립박물관에 들렀어요. 여러 신라의 유물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더군요. 토기, 와전, 금관, 불상, 옥구슬, 장신구 등등 그러나 나의 시선을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토우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형상으로 빚어진 토우들...남자,여자,새,이름모를 짐승들...질박하고 소박하며 희화적이고 다정한 이 토우들...결코 다듬어지지 않고 제멋대로 만들어진 듯한 이 수수께끼같은 유물들...이 충격을 오랜동안 남몰래 가슴에 감추고 언젠가는 작품으로 표현해보자 노력했어요. 토우는 오늘날 한갓 우리에게 유물로서 전해지지만, 이 불가사의한 흙덩어리를 통해 역사를 뛰어넘는 교감을 즉 신라인과 현대인의 정신적 교류를 작품으로 시도해 보았지요.”

정귀인. 그는 전라남도 벌교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풍요했던 그의 집. 아버지는 예인은 아니었으나 가무를 좋아했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런 끼를 가진 계집애였다. 어린 나이에 굿거리, 혹은 악극단을 찾아 몇 시간이고 넋을 잃고 구경하는 것이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그의 재능을 눈치채고 7세에 춤을 시작케 했다. 이런 그는 금란여중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춤에 입문케 된다. 

춤으로 썩어가는 온천천 살리다 ?

그의 춤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1980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으로 향하게 한다. 그의 부푼 꿈은 태평양을 건너가나, 그는 그곳에서 곧 절망한다.

“ 정말 그들 속에서 내가 원숭이처럼 느껴졌어요. 리허설 극장 벽면에 걸린 거대한 거울 속에서 다리가 길고 얼굴이 흰 그들 속에 끼인 나의 모습을 보았어요. 왜 그렇게 작고 까맣던지...정말 환멸감이 일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나는 한국인이구나. 왜 내가 이 먼 곳까지 현대무용을 배우러 왔던가 후회하기 시작했죠. 그 순간 나는 한국인이고, 나는 한국 춤을 추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거울 같은 것이었죠. 그래서 나는 한국을 알기 위해 나를 알기 위해 그들을 더 알고 싶어했고, 그들의 문화, 풍습, 의식들을 세밀히 관찰하면서 나는 진정한 한국을 알게 되었고, 나를 알게 되고 한국의 춤을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춤을 추어야 하는 지를 유학하면서 깨달은 것이죠. 저에게는 정말 귀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 <아리랑>을 만들어 예상치 못한 호평을 받게 된다.

“정귀인의 <아리랑>은 한 폭의 잘 그려진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뉴욕 타임즈 1982 잭 앤더슨)”

정귀인은 타고난 재능있는 춤꾼이고 안무자이다. 또한 그녀는 잠재적인 예술적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1983.뉴욕 미미 가레이드)

“정귀인은 예술적 감각과 뛰어난 표현력을 지닌 춤꾼이다. 동양적인 것과 현대적 서양춤의 면모를 함께 지닌 사람으로서 이런 양면은 그녀의 작품을 독창적이고, 또한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춤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1985. 뉴욕 로버트 던)  등등 많은 호평을 받은, 그는 미국 속에서 '한국의 춤'을 깨닫게 된 것이다.

 ”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자신의 얼굴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나는 그들을 통해 우리를 본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한국인의 진한 정서와 심성이 배어있는 작품 <산사에 뜨는 달><광대별곡><베개 속의 도깨비들><토우 2><토우 3><씻김> 등을 창작 안무, 시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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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으로 썩어가는 온천천 살리다 ?  

그리고 그는, 한국최초 '환경무용'을 시도한 춤꾼으로 '한국 춤'의 획을 긋는다.  <청포에 머리 감고> 등 부산대학교 지하철 역, 썩어가는 '온천천'에서 작품을 올렸다. 자연사상을 근저에 두고, 환경의 심각함을, 높은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웠다.

“춤으로도 시대의 아픔, 역사까지 기록할 수 있습니다.”

힘을 주어 말하는 그의 눈빛은 불타오르는 춤에 대한 열망만큼 깊고 빛난다. 그의 ‘환경무용’ 공연 애착은 춤꾼으로서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에 대한 메세지이다.

 “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온천천을 걷다가 구상케 되었는데, 의외로 반응들이 좋고, 또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나의 임무인 것같습니다. 춤도 말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된것이죠. 하긴 춤은 이미 몸으로 말을 하지만...몸짓이상의 말이 이젠 춤에 필요한 것같습니다. ”

그는 환경무용시리즈로 어디서든 춤은 공존할 수 있단 것을, 더욱 절실히 터득케 되었다고 한다.

 “ 춤은 무대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들판, 바닷가, 강가....그것들이 다 무대라고 봅니다.”

“ 가장 한국적인 춤이 가장 현대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대에 맞는 감각의 흐름을 가미해야 하겠지만요. 한국 춤이라고 고집스런 전통만 승계하는데 끝난다면 춤은 이미 춤이 아니라 박제된 예술에 불과합니다.”

 “생각 없는 춤은 인형이 추는 춤에 불과해요.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춤이 될 때 진정한 예술이 되는 것이죠.”

그는 지금. 부산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친다. 그는 지금 대단히 행복한단다. 더구나 바다와 함께 사는 그의 일상은 평화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춤이 갖는 일회적 한시성에 대해 가끔은 허탈해 하는 것도 진심이라고 털어 놓는다.

 “가끔 춤이 재 같다는 생각을 해요. 춤꾼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둘러서서 손을 꼭 잡아주죠. ”

그의 춤이 재 같다는 생각..... 그러나 재로 인식되는 춤이기에 그녀의 춤을 향한 열망은 더욱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그런데 그 허탈함을 채우는 것도 역시 춤이에요. 그래서 더욱 춤에 매달리죠. 춤으로 비우고 춤으로 채우는 반복이에요. ”

그의 춤은 나비보다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바다처럼 깊은 춤의 물결이 출렁이는 듯.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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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uywatchshop.net/ BlogIcon ww 2011/12/27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의 스포츠 - 2011.12.27] 박주영, 박지성, 지동원, 아시아 고교야구 최강전, 남자프로농구, 남자프로배구, 여자프로배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리, 더 넓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
수족관에서 연못으로 떠난 물고기, '조제. 2'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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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1과 조제 2

눈에 티가 들어가면, 종이에 몸3개에 눈이 하나인 물고기를 그려 놓고 그 눈에 못이나 가시를 꽂은 후, "물고기야, 물고기야, 내 눈의 티를 빼 주면 네 눈의 가시도 빼주지."하고 주문을 외는 풍습이 우리네에 행해져 왔다.  이렇게 하면 그림 속의 물고기가 이를 들어준다고 한다. 이렇게 물고기는 신기한 영험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물고기들은 대부분 재액 예방을 상징한다.

3년전 우연히 지나는 길에 금붕어 두 마리를 사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프랑스 작가,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 '조제'를 빌려, '조제 1', '조제 2'로 불러주었다. 처음 살 때는 유리 어항 속에 키웠으나, 점점 몸이 커지면서 비닐어항을 만들어서 여태껏 잘 자란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한정이 있어 점점 몸집이 비대해져 가는, 물고기들에게는 점점 넓은 세상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 관리 소홀 때문일까. 며칠 여행 후 돌아와 보니, 조제 1의 상태가 몹시 안 좋았다. 물 위로 고개를 자주 내밀고 마치 뭔가 내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 느껴지지기도 했다. 약수터에 가서 물을 길어와서 새로 갈아주고 수초도 사다 넣어 보았으나, 구석진 곳에서 가만히 있거나, 두 마리의 물고기들은, 여느 때와 달리 서로 이마를 맞대고 부축하면서 다니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1주일 전에, '조제 1' 이 그만 둥둥 물 위로 힘 없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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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에 방생한 조제. 2

세종실록에는 고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하백과 변신 경합을 벌인 기록이 있다. 그 때, 하백이 뜰의 못 속에 들어가 잉어로 변해 노닐자, 해모수는 수달이 되어 그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물고기 역시 신기한 영험력이 있는 물고기로 상징된다. 이러한 물고기는 이상적인 공간으로서의 용궁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주몽신화에서도 주몽이 활을 잘 다루고 하늘의 원리도 신봉했던 점으로 보아, 주몽 집단의 주된 경제 형태는 수렵과 어로의 가능성이 짙다고 한다. 예부로 고사를 지내거나 굿을 할 때 제물의 하나로 물고기(북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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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넓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

강릉의 '양어지' 설화는 물고기가 은혜를 갚은 예를 보여준다. 예로 부터 물고기는 물과 더불어 생명 또는 건강을 상징해 왔다. 우리 풍습에는 절기에 맞춰 물고기를 잡아 먹거나 높은 사람에게 바치는 풍속이 있다. 물고기가 지닌 생명력 때문에 몸의 보양에 좋은 것으로 인신했던 것에 비롯된다.

물고기 '조제 1'을 땅에 묻고 돌아와 보니, 혼자 남아서 너무 외로워 보이는 물고기, '조제 2'를 위해 수족관에서 짝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금붕어 3마리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서로 반갑다고 같이 어울려 다니더니, 몸집이 '큰 조제 2'는 외톨이처럼 사라져 버린 '조제1'을 찾아 헤매는 듯 했다. 갑자기 식구가 늘어난 비닐 어항 속에 '조제2'의 운신이 자꾸 힘들어 보여, 궁리 끝에 가까운 절의 연못에 방생했다. 연못 속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어울려 다니며 살고 있어, '조제2'는, 우리네 세상 살이처럼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듯 하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마치며 사회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우리네 사는 이치처럼 물고기들의 세상 역시, 언제나 이별이 없는 삶은 없는 듯 하다. 잘 지내라, 우리 먼 훗날, 더 넓은 바다에서 다시 또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자 !


<인터팬> 타우루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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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임감.. 2008/06/15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다지 좋은 행동으로 보이진 않는군요...

    물고기가 죽는 대부분은 원인은 수질악화입니다...

    금붕어가 여과기기 없이 더러운 물에도 잘 적응하고 살긴하지만...

    저렇게 작은 비닐 어항에서 물도 적게 키우면...

    대부분 수질 악화와 산소 부족으로 죽게 됩니다...

    비싸지 않은 어항에 여과기 하나만 달아줬어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겁니다...

    대부분 어디서 금붕어 받아서 키우는 사람들 조그만 복주머니 어항이나 유리잔에

    키우는데..약간의 환경을 조성해주려는 노력만 있었으면...

    수명 다 할 때까지 살 수 있었는데...그거 죽이고..

    남은 녀석 연못에 풀어주고 안타까운 듯한 글...별로 공감 못하겠네요..

  2. jin 2008/06/15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위에 책임감 님 말에 동감......
    어항이랑 여과기 만 있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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