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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퍼포먼스의 6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 시즌


현존 퍼포먼스의 연극 <캘리포니아>가 2010.12.22(수)-31일(금)까지 국립극장 별오름 무대에서 공연된다.


연극 <캘리포니아>는 오늘날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아가고 있는 창녀와 건달의 사랑이야기이다. 최교익 작 박명규 연출의 <캘리포니아>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져 있고 자주 감각을 인용한 상징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소외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 올라가는 가슴 따듯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국립극장을 당황케 한 파격적 소재!


무대에 막이 오르면 남자주인공들의 화려한 격투와 여주인공들의 관능미 넘치는 의상과 봉 댄스의 형상으로 시작된다.


“오빠 놀다가~ 싸게 해줄께”라며 관객을 유혹하는 파격적인 대사로 사창가의 삶을 깊숙히 파고들며 생생히 묘사한다. 까다로운 국립극장의 대관심의에서 난항을 겪을 만큼 현존 퍼포먼스의 작품은 파격적이다.

그러나 대관심의위원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예술적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일들이 더 많다.”며 현존 퍼포먼스의 창작의 다양성에 큰 기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먼저 죽여야 사는 조직의 세계, 살기위해 몸을 파는 창녀들


이 작품에서는 먼저 죽여야 사는 조직의 세계, 살기위해 몸을 파는 창녀들 그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창가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인 캘리포니아를 꿈꾸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연출인 박명규(현존 퍼포먼스 대표)는 사창가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욕망인 배설욕을 상징적 기호로 묘사 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 밀려오는 대형 뮤지컬이 독식 하고 있는 지금 공연계 현실에서 창작연극의 보급을 위해 작가 연출가들의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시급하다고 오늘날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소외 받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라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올려진다고 한다. 문의)02-742-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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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동안이라도 지구별 여행자가 되는 일은 즐겁다

진료실을 훌쩍 떠나 바깥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일은 매번 즐겁다. 여느 때처럼 작년 추석에도 훌쩍 떠났다. 잠시동안이나마 온전히 여행자로 지낼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면서.

평소 클래식전문가인 유형종 선생님의 오페라-발레 감상법 강의를 접해오면서 클래식의 본고장, 빈에서 머물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추석에는 오스트리아, 빈(Wien)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천사들의 합창으로 시작한 빈에서의 일요일 아침

빈에서의 첫날은 왕궁예배당에서 빈소년합창단이 성가를 부르는 일요 아침 미사로 시작했다. 1498년 왕궁 부속 예배당의 합창단으로 창단된 이후 지금까지 매주 일요미사에 참여해왔다.

슈베르트가 어린 시절 보이 소프라노로, 베토벤이 반주자로 활동했고, 모차르트는 매일 아침 미사 시간에 이 합창단을 지휘했다. 미사에 참가하는 성가대에는 빈소년합창단 뿐 아니라 빈 국립가극장 관현악단의 선발 멤버와 솔리스트들까지 함께 하기 때문에 이 미사는 퀄리티 높은 한 시간 동안의 공연이라고 봐도 된다.

예배당 2층 뒤쪽 성가대석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순수하고 맑은 노랫소리가 작은 예배당을 가득 채울 때 눈을 잠시 감아 보았다. 천사들의 목소리가 아마도 이럴 것이다.


 베토벤의 흔적,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은 평생 동안 80회 이상이나 집을 옮겼다고 하는데, 빈에서 트램을 타고 20-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하일리겐슈타트에는 그가 살았던 집이 세 군데나 있다. 그린칭과 하일리겐슈타트의 가로수길을 걸어보니, 무엇이 그로 하여금 ‘합창’과 ‘전원’을 작곡하고 싶도록 만들었는지 알 것 만 같다.

시냇물이 흐르고 숲이 많은 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머무른다면 나라도 교향곡을 만들고 싶어질 터였다. 이 산기슭 마을은 낡은 농가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선술집, 호이리게에서 그 고장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많다. 그 중 한 군데를 골라 들어가 와인을 마시는데, 바이올린, 아코디언 연주자들이 흥겨운 민요와 왈츠, 오페레타의 곡들을 연주해준다. 와인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베토벤이 이 마을을 마음에 들어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대중과 함께하는 클래식의 도시, 빈


저녁시간, 베르디의 ‘돈 까를로’를 감상하기 위해 세계 3대 극장 중의 하나인 빈(Wien) 국립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로비에는 공연을 보기 위해 정장을 하고 온 노부부들이 많다. 주말이어서 그랬는지 좌석표는 벌써 매진. 빈 국립오페라하우스 인터넷 예매 싸이트에서 독일어의 압박을 극복하고 여행 출발 전에 예매해놓은 티켓이 위력을 발휘한다.

공연이 끝난 뒤 오페라하우스 밖으로 나오니, 건물 벽 커다란 전광판에는 오페라 DVD가 방송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당에 앉아 DVD 공연을 감상하고 있는데, 관객들의 관람 수준이 상당히 높다.

다음날 저녁은 오페레타 전문공연장, 폴크스오퍼(Volksoper)에서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를 감상했다. 이곳도 관객석은 정장을 차려입은 노부부가 많은 편이다.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찬 관객석의 분위기는 품격과 여유 그 자체다. 빈 시민들에게 오페라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즐거운 퍼포먼스인 것 같다. 대중과 함께하는 클래식이 정말 부럽다.


 행
복지수를 높이는 방법, 여행

직장인, 그리고 CEO들의 근래 화두는 work & life balance다. 특히 work 위주의 생활이 지속될 때 만성 피로는 물론이고, 어지럼증, 신경성 고혈압, 만성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 공황증, 불면증으로 진료실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 사회적인 성공이 곧 행복은 아닌 것 같다.

work & life balance를 잘 잡아주려면 몸과 마음의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세로토닌’을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님도 주창하는 행복씨앗 ‘세로토닌’운동은 문화적인 성숙과 차분함을 통해 인간의 품격을 높이자는 것이다. 세로토닌이 많이 생산될수록 행복지수도 올라간다.

빈(Wien)여행은 8박9일로 짧기는 했지만 세로토닌이 충전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세로토닌 충전방법을 찾아보시길.....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물
론, 가방하나 달랑 메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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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kaladarshan.net BlogIcon Kaftan 2011/11/26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기사를 사랑 ... 실제로는 카프탄 끝내 ... 같은 물건을 게시 계속

  2. Favicon of http://www.sonicinfosystem.com BlogIcon SEO Services India 2012/01/30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가 여기있어. 난 학교에서 내 논문에 대해 지금 일주일 동안이 주제에 대한 읽기와 제가 블로그에 이곳을 찾았 하나님께 감사 했어요. 이 읽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5단계 클렌징을 해요, 먼저 눈과 입술을 전용 리무버로 닦아내고, 클렌징크림으로 노란 화운데이션이 묻어나지 않을때까지 여러번 닦아요. 그리고 클렌징워터로 닦아내고 비누로 한번 세안, 마지막으로 폼 클렌징으로 세안을 해요.”

“어머, 그걸 귀챦게 다 한단 말이예요?”

“그럼요. 그래야 화장이 깨끗하게 지워지죠.”

내 말에 큰 눈이 더 동그랗게 커진 탤런트 김혜리는 “클렌징 오일을 안쓰세요?”라고 묻는다?

“클렌징 오일? 그게 뭐예요?”

상품이라면 모르는게 없을거라고 생각한 쇼호스트인 내가 클렌징 오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의외였나 보다. 혜리씨는 나에게 바싹 다가앉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슈에무라라고...제가 쓰는 건데요, 일본에서 만든 화장품 오일이예요. 그거 하나면 그렇게 복잡하게 화장지울 필요 없어요. 하나로 싹 지워져요. 피부도 촉촉해지구요.”

나의 귀가 당나귀 귀보다 더 커졌던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슈에무라 클렌징! 그때가 1999년도였다. 지금이야 클렌징 오일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해졌지만 그때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클렌징 오일하나로 메이컵이 완벽하게 지워지다니...그날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클렌징 크림을 바르고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티슈로 박박 닦아내며 화장을 지우고 나면 얼굴이 단풍잎처럼 붉어지고 화장을 지우는데도 30분이나 시간을 허비했던 나는,
그날 30초 만에 짙은 화장이 말끔하게 지워지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이건 모세가 홍해를 갈라 길을 만든 것보다 더한 기적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아주 간편하고 완벽하게 화장을 지울수 있다니...게다가 아이리무버로 지우기 힘든 아이라이너며 마스카라까지...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른다.

오일인데 끈적이지 않고 눈에 따갑지도 않고 유분 가득한 화장 노폐물은 말끔히 빠져나가고 게다가 화장을 지울때 너무 박박 닦아내는 바람에 버석버석해진 나의 피부가
클렌징후에도 보들보들했다다. 오호! 쾌재라! 이렇게라면 하루에 10번이라도 지울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다지 않는가? 그때부터 슈에무라 클렌징오일에 대한 나의 의리는 10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1955년 미국 헐리우드 배우들을 위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한 일본 메이크업 아티스트 슈에무라는 1967년 오일을 원료로 한 클렌징 제품을 만들어 클렌징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짙은 화장을 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잔여물 없이 화장을 깨끗하게 지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유분이 주 베이스인 색조화장을 역시 유분으로 지우는 간단한 원리이지만 슈에무라의 클렌징 오일은 포뮬러의 배합비율이 다르고 성분이 남다르다. 그 어떤 브랜드보다 부드러운 질감과 빠르고 쉬운 세정력 그리고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아 슈에무라의 간판 얼굴일 뿐아니라 클렌징 오일계의 대표 스타다.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의 성분은 동백꽃, 생강뿌리, 녹차, 꽃나뭇 잎, 체리, 오렌지, 토마토, 아보카도, 카모카일, 감초, 한방허브 추출물 그리고 홍화유, 스쿠알렌, 마카다미아, AHA성분 이 피부세정은 물론 탄력, 브라이트닝, 여드름 조절, 각질관리, 염증 진정 및 완화에 효과를 준다. 항산화 성분은 피부노화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은은한 꽃향, 상큼한 허브향 그리고 신선한 스파이시 후르츠향이 클렌징 하는 동안 아로마 효과도 느끼게 한다.

클렌징 오일을 잘 사용하면 적어도 5년은 어려 보이는 맑은 피부를 만들 수 있다.

먼저 마른 손에 클렌징 오일을 3-4번 정도 펌핑해서 얼굴에 바르고 골고루 맛사지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부드럽게!!! 박박 문질러야 화장품 찌꺼기가 잘 빠지는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박박 맛사지한다. 절대 금물이다! 마치 애인의 얼굴을 만지듯 맛사지 해야 한다. 그러다가 손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 다시 얼굴을 부드럽게 맛사지한다.


그러면 이때부터 얼굴에 번드르르하게 퍼져 있던 오일이 신기하게 하얀 우유처럼 변한다. 질감도 미끌거리지 않고 물처럼 변해간다. 만약 하얗게 우유처럼 변하지 않은 부위가 있다면 미지근한 물을 손에 더 묻혀 얼굴에 맛사지 해준다. 이때도 주의할 점은 아주 부드럽게!!! 우유를 바른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 그때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이 2분내에 끝나야 한다.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은 빠른 침투력으로 순식간에 피부 모공 속에 쏙 들어가 화장품 잔여물을 꼼짝 못하게 감싼 후 함께 물에 용해되면서 피부로부터 빠져 나온다.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클렌징 오일의 유분기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해서 비누세안을 한번 더 하는 여성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는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 하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

타월로 얼굴을 닦고 난 뒤에 만져지는 촉촉한 감촉은 내가 조금씩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고 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때는 덴마크 왕자의 피앙세도 부럽지 않다.

메이컵을 잘하면 얼굴이 예뻐 보이지만 클렌징을 잘하면 피부가 예뻐진다.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클렌징 오일 효과를 톡톡히 봤는지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로 목욕까지 했다고 한다. 내 피부상태도 나이에 비해 썩 괜
챦다는 말을 듣는 편인데 혹시 10년 넘게 사용해오고 있는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덕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오랫동안 짙은 방송 화장을 하고도 피부가 칙칙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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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런 얼굴과 쭉 찢어진 눈, 바가지머리. 마치 명랑 만화 속에서 뛰쳐나온 것과 같은 외모의 그는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를 향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특유의 미소를 보냈다.

대만 CTS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에비뉴’ 우승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 린위춘. ‘대만에서 온 뚱보’라며 장난스레 자신을 소개했지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을 보였다.


 ‘슈퍼스타 에비뉴’에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됐나

14세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부모님께서는 가수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원하셨지만 나는 조금 더 꿈을 실현할 시간을 자신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악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4월 ‘슈퍼스타 애비뉴’에참가 후 유명해 지게 됐다.


 가수 준비하면서 힘든 때도 많았을 것 같다

그 동안의 일을 다 말한다면 너무 길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그러던 중 보게 된 수잔 보일의 영상은 나에게 희망을 줬다. 현재 힘들게 가수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자신이 하고 싶다면 후회가 남지 않는 만큼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모두가 자기를 얕잡아 본다고 해도 계속 노력해 나가면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을 비웃었던 사람에게 가장 잘 대응, 복수할 수 있는 것은 그들보다 더 크게 성공하는 것 아닐까?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여러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워 본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음악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래를 계속 하게 했던 원동력은 낙천적인 성격이 아닐까한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이 힘들다가도 배부르게 밥 먹고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기분이 다 풀려있었다.

그리고 슬플 때도 항상 노래를 통해서 자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정도로 노래가 없는 인생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노래를 잘했나

워낙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해서 기회가 있으면 참가하려고 했지만 학창시절, 뚱보라는 별명도 있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자신감이 부족했다. 내가 무대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고 그 당시에는 인기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의 노래를 좋아하고 격려해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누구인가

6, 7월경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할 때 어떤 맹인 분께 편지를 받았다. 눈이 안 보이는 것 때문에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던 그 분은 나의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인생에 대한 희망과 목표의 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 편지를 읽고 너무 마음이 벅차올랐다.

내가 수잔 보일의 노래를 듣고 용기와 희망을 얻었듯 또 다른 사람이 내 노래를 듣고 희망을 찾았다는 점이 내 삶에 있어 큰 원동력이 됐고 앞으로도 노래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윤성혜 기자 (라운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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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너무 완벽한 것 보다는, 좀 덜 완벽하기 때문에 더 정이 가는 경우도 있더군요. 강사님도 가끔씩은 말도 좀 더듬고 그러세요. 허허...” 몇해 전, 이미지메이킹 강의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어느 CEO의 농담 섞인 진담인 것 같은 이 말 때문에,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지 몰라 며칠 동안 고심을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한참 뒤, 아래의 일화를 보고서야 그 CEO가 내게 한 말의 뜻을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알듯 했다.

영국 의회에 어떤 초선 의원이 있었다.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청산유수로 너무나도 완벽한 연설을 했다. 연설을 마치고 난 다음에 연설의 대가인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가서 자기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해 달라고 했다. 물론 처칠로부터 탁월한 연설이었다라는 평가와 칭찬을 기대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의 대답은 의외였다."다음부터는 좀 더듬거리게나! 너무 완벽함은 정 떨어질 수 도 있으니까 말일세!" 그도 그럴 것이, 옛 말에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금이 간 항아리에서 나온 물이 들꽃을 생기 있게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한 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든다.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막대기로 만든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는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금이 간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 찬 모습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나 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은 금이 간 항아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 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오른쪽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즐긴단다." 라고...

금이 간 항아리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일찍이 깨우친 그 주인은 바로 이 시대의 선각자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 사람들 때문일는지도 모른다는...그런 생각이 불현듯 고개를 내민다.

자신이 금이 안 간 완벽한 아내라고 자만하기 전에, 혹시 너무 완벽한 나 때문에 가족들이 숨막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금이 안 간 완벽한 상사라고 자만하기 전에, 혹시 너무 완벽한 자신 때문에 회사팀원들이 숨 막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조금 금이 간 것을 속상해 하기 보다는 금이 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좋은 점을 생각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점점 메말라가는 지금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한 뼘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름길일는지도…….

좀 금이 가면 어떤가? 조금 틈이 있으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금이 갔기 때문에 훌륭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 참 위안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소설가인 발자크가 이렇게 말했다. 불행을 불행으로서 끝을 내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불행 앞에 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행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불행을 모면할 길은 없다. 불행은 예고없이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불행을 밟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우리에게 있다. 불행은 때때로 유일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불행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 이 칼럼을 읽은 순간부터 자신의 금이 간점을 보면서 오히려 웃을 수 있도록 한발짝만 노력해 보면 좋겠다싶다.

의사들이 약 대신 '웃음'을 처방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하루에 세 번 약을 복용하는 대신 48시간 동안 큰 소리로 웃으십시오."라고 말이다. 웃음은 약의 효과를 네 배로 높여주는 효과를 갖고 있는 약으로 그것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안전한 약이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이쪽 부분에서는 살짝 금이 갔다고 생각된다면, 힘내고 그 금이 간 부분 때문에 좋은 점은 어떤 점이 있는지 반대방향도 돋보기로 한번 들여다보자. 그러는 순간 행복은 내 품에 조금 더 안쪽으로 날아 들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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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저택의 담을넘은 어설픈 도둑들 장애인 건영에 딱 걸렸다!

극단 지구연극 10주년 기념공연 연극 <바미 기펏네>(원제:밤이 깊었네)가 오는 11월 26일(금)부터 12월 26일(일) 까지 한국공연예술센터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된다. 극단 지구연극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인 연극 <바미 기펏네>는 김태훈 연출가의 소외된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시리즈 중 두번째 작품이다.


취업난과 생활고로 시달리던 민재가 고향 선배인 수용의 도움으로 성북동 저택의 담을 넘으며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이라고 생각했던 그들 앞에 나타난 쇠사슬에 묶인 장애인 건영의 모습에 소스라 치게 놀라며 극은 시작된다. 건영의 부탁으로 민재와 수용은 2010년 마지막 날 밤을 건영과 함께 보내게 되는데…


조승우, 문소리를 넘어선 홍기준의 살아있는 연기!


가족들에 의해 쇠사슬에 묶여있는 장애인의 설정은 다소 민감할 수 있고 충격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인식과 편견 그리고 현대인의 이기적인 속성을 극 중에서 함축하고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킨다. 장애인 건영을 연기한 홍기준은 2008년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 초연당시에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100페스티벌 미래연기상을 수상한 그는 러시아 명문연극대학인 쉐프킨과 슈킨에서 연기를 수학한 실력파 배우이다.



김태훈의 소외당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시리즈

이 작품의 연출인 김태훈은 배우, 연출가, 대학교수 등 공연계에서 활동하는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2008년 12월 <시사저널>에서 선정한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영웅 300인 중 연극부분 2위에 오르며 그의 실력과 영향력을 입증한바 있다.  ‘러시아 유학 1세대’인 그는 2004년 <안녕! 모스트바>로 서울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하고 2008년 9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러 교류축제’에서 개막식 총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그중 소외당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에 큰 애정이 있다. 이 작품들은 시리즈로 제작되어 극단의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제24회 서울연극제 연출상과 연기상을 휩쓴 <안녕, 모스크바>는 창녀와 그를 사랑한 경찰관 이 들에 사랑에 간섭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남산예술센터 2010 시즌 공동제작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던 박범신 작가 원작의 <서울, 나마스테>는 한국 사회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비추며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그는 이번 <바미 기펏네>를 통해 장애인들의 편견을 허물어 가는 과정을 가슴 뭉클한 감동을 객석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세상을 비추는 아름다운 연극 <바미 기펏네>

연극 <바미 기펏네>는 서울문화재단의 창작활성화지원 사업과 12월 사랑티켓 참가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의 예술감독인 극단 지구연극의 대표 차태호(명지대 교수)는 “연극 작업으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박수 받고 싶다”며 연말 뜻 깊은 사회적 활동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 복지재단에 객석나눔을 통해 문화소외계층을 공연에 초청하고 25일 크리스마스 공연 수입전액을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관련단체에 수익금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소외된 이웃과 극단단원들 그리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과 따뜻한 연말 의미있게 보내고자 이번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랑티켓 이용시 8,000~10,000원 관람가능 (문의) 달님아트 070-4136-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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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luelizardsunscreen.org BlogIcon blue lizard sunscreen 2011/08/17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모스트바>로 서울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하고




핀란드어로 시수(sisu)는‘집요함’, 또는 ‘악착같음’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핀란드를 이룬 원동력은바로 현명함을 바탕으로 한‘시수’가 아닐까.

헬싱키 항구의 남서쪽 카이보푸이스토(Kaivopuisto) 공원에서 길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던 젊은 부부가 내게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건넨다.

“도와드릴까요?”

“핀란드 독립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를 찾고 있습니다만...”
“아, 외국인이 이것을 찾다니.... 바로 저기 있습니다.”
“키이토스!(Kiitos!)"라고 젊은 부부에게 핀란드어로 감사의 말을 하고 나무 앞에 섰다.

핀란드는 스웨덴의 한 지방으로 존속하다가 19세기에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러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핀란드’라는 지명이 정식으로 나라 이름이 된 것은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다음부터이다.

핀란드는 독립을 기념하여 이곳에 나무만 한 그루 심었다. 지금도 독립기념관 같은 것은 없다. 독립기념관을 훌륭하게 설계할만한 뛰어난 건축가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독립기념관을 지을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애국심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솔직한 얘기로 거창한 기념관을 세워 이웃 나라의 속국이었다는 것을 ‘보란 듯이’ 강조 필요가 있을까? 지배한 나라를 앞질러 가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고난을 이겨낸 민족

현재 핀란드는 인구를 모두 합쳐야 5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소수민족의 나라이다. 그러나 약소민족의 나라는 절대 아니다. 약소민족이냐 아니냐는 그 민족의 의지에 달려있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가난한 나라였으나 지금은 첨단선진공업국으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나라이며,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회복지국가 중의 하나이며, 전 세계에서 공직자들이 가장 청렴한 국가들 중의 하나이며, 또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을 운용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이러한 지표들은 국가 운영의 효율성뿐 아니라 국민들의 애국심과 직결된다.

▲ 건축가 알바르 알토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손꼽히는 핀란디아 홀.

핀란드어에 시수(sisu)란 말이 있다. 이것은 ‘집요함’, 또는 ‘악착같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핀란드를 이룬 원동력은 바로 현명함을 바탕으로 하는 ‘시수’가 아닐까?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지만, 침략을 받았을 때는 굴하지 않고 과감히 맞서 싸웠으며, 평화시에는 주변 강대국들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실리를 챙겨왔다.

예로, 1939년 스탈린이 핀란드를 삼키려 하자 핀란드는 외부의 도움 없이 오로지 소수의 군대로 무적의 붉은 군대를 궤멸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어쩔 수없이 나치독일과 동맹하는 바람에 종전 후에는 소련에 대하여 엄청난 전쟁손해배상금도 물어야 했지만 오로지 ‘시수’ 정신으로 모두 기한 내에 완불했다. 이런 예는 지구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 구름사이로 한 줄기의 햇살이 헬싱키의 루터교 대성전(Tuomokirkko) 위에 떨어진다.

또 동서 냉전체제 하에서는 동서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겼고,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최대 시장이었던 소련이 와해되면서 핀란드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지만 자국민을 위한 사회복지정책만큼은 조금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다시 ‘시수’ 정신으로 무장하여 몇 년 뒤에 다시 일어섰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철저히 보호했고, 국민은 국가를 철저히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핀란드의 두 기둥, 음악가 시벨리우스와 건축가 알토

핀란드에서는 음악에 대해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음악가 쟝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건축에 대해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건축가 알바르 알토(Alvar Aalto)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두 사람은 신생 핀란드가 수준 높은 문화의 나라임을 전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다.

알바르 알토는 20세기 건축에 관한 한 핀란드의 국제적인 위상을 최고로 올려놓은 건축가이며 산업디자이너인데, 핀란드
건축을 30년 동안 이끌어나가면서 핀란드 문화의 합리적이고 낭만적인 요소를 융합한 건축을 추구했다.

헬싱키에 있는 그의 대표적인 건축작품 ‘핀란디아 홀’(1975년 완공)은 1년에 300백 회 정도의 회의와, 200회 정도의 연주회가 열리는 곳으로, 전 세계에서 건축 관광객들이 일년내내 몰려오는 명소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약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호숫가에는 시벨리우스 공원이 있는데, 숲과 호수를 배경으로 바위 위에 세워진 시벨리우스 기념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기념상은 핀란드 최고의 여류 조각가 엘리아 훌티넨이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에 완성한 것으로, 그 작품 속에는 엄정한 표현력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철제 조각이지만 대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웅장하고 신비한 음향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듯하다.

1865년에 태어나 1957년까지 장수한 후기낭만파 음악의 대가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이름은 핀란드가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핀란드의 자연과 핀란드의 민족설화를 담은 대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에서 형상화된 전설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 차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칼레발라는 뢴로트라는 학자가 정리하여 1835년에 처음으로 출판했고 1849년에는 자료를 더 보충한 완결판을 출판했는데, 칼레발라의 출판은 핀란드 사람들에게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작품 속에는 민족 서사시에서 보여 지는 핀란드어의 음운(音韻)을 음악에 표현하려고 한 흔적은 곳곳에 보이며, 그의 음악적 영감은 오케스트라의 음향으로 그대로 옮겨져 있다.

그런데 그는 20세기 초 유럽음악의 어지럽다고 할 정도의 실험적 운동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반음계나 불협화음을 거의 쓰지 않았다. 당시 다른 음악가들이 여러 가지 색상으로 칵테일을 만들고 있을 때, 시벨리우스는 그저 맑고 깨끗한 샘물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간결한 핀란드의 디자인처럼.
또 오염되지 않은 핀란드의 자연환경처럼, 그의 대표작은 단연 <핀란디아>이다.

시벨리우스는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기 바로 직전인 1899년에 이 관현악곡을 썼는데, 이 곡은 독립된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던 핀란드사람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기 때문에 러시아는 이 곡이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이 곡에서 성가풍의 선율 부분은 나중에 시벨리우스 자신에 의해 4부로 편곡되어 전 세계의 모든 합창단들이 한번쯤 불러 보는 명곡이 되었다.

광풍을 몰고 올 듯한 검은 구름사이로 한 줄기의 햇살이 헬싱키의 루터교 대성전(Tuomokirkko) 위에 떨어진다. 어두운 하늘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우뚝 솟아있는 하얀색의 대성전은 마치 혹독한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낸 핀란드 사람들의 정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광경을 보니 <핀란디아>가 북유럽 하늘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글과 사진: 정태남
tainam@tiscal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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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tchwind.com BlogIcon 플린 2010/12/15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기념관이 없다는 것이 자부심이 될 수도 있군요. 핀란디아 조만간 제대로 감상해봐야 겠네요.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3년 국제현상설계 더 픽클럽 홍콩(The Peak Club, Hong Kong)에 당선작가로 발표되면서 부터이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그는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수학을, 영국 런던의 AA 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이후 런던에 건축사무소를 개설하고 불과 33살의 나이에 국제무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가 제출한 작품은 홍콩 빅토리아산 정상에 지어지는 건물이라는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그것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설계를 통해 보여준 그의 건축관 때문이었다. 날아갈 듯한 선의 조합, 유동적인 공간구성, 대담한 조형감각, 연속적인 건물의 시퀀스(sequence)가 연출하는 도시적 세련미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근대건축이 추구했던 단순성과 순수성의 허구가 지적되면서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건축 모색 과정과 그 근간을 같이 한다. 포스트모던(post-modern)건축이 근대 건축에서 간과한 새로운 미학을 시도하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차용한 건축어휘를 재해석하여 대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Zaha Hadid는 보다 순수한 형태적 분석에 기초한 접근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실험적 건축을 표방하는 아키그램 멤버들이 주축이 된 런던 AA 스쿨에서 수학한 그의 건축은 폴 끌레(Paul Klee), 모홀리 나기(Moholy-N a g y ) , 말레비치( Kazim i r Malevich) 그리고 엘 리지스키(El Lissitzky)등이 시도한 형태 요소들의 움직임(movement)과 역학분석(kinetic)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특히 물체(object)의 자유로운 구성과 요소들이 운동성을 갖고 독립적 영역을 확보하는 공간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자하 하디드의 작품처럼 추상적인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모더니즘 전통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그의 현상 설계안은 지어지지 않았고 그는 한동안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로 남게 되지만 1991년 독일 라인지방에 비트라소방서(Vitra Fire Station)의 설계를 맡게 되면서 다시금 건축가로서 이름을 날리기에 이른다.

비트라소방서는 기존 건축물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건물로서 건축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해도 과언이아니다. 건축요소들이 분해, 해체되고 그 해체된 요소들이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는 듯한 구성은 기존 건축에선 익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기울어진 벽체, 예각과 둔각이 혼합된 면의 조합, 솔리드와 보이드가 교차되는 공간의 예외적 구성 등이 소방서라는 기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홍콩의 픽클럽(Peak Club)에서 보여줬던 요소들을 선형(linear)으로 배열하고 조합하여 이루어진 이 소방서는 합리적 공간배치와 형태도출이라는 근대건축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 것이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건축의 모토가 새롭게 도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자하 하디드는 1988년 미국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에서 마크 위글리와 필립 존슨이 기획한 “해체주의 건축” 전시회에 초대된다. 당시 함께 초대된 작가는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 렘 쿨하스(Rem Koolhaas), 다니엘 리벤스킨트(Daniel Libeskind), 베르나르 츄미(Bernard schumi) 등으로, 이 전시는 해체주의 건축을 구체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자하 하디드가 해체주의 건축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이 전시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자본주의와 대중소비문화의 발달은 자하 하디드가 건축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양분을 제공하게 된다. 스펙타클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이 그에게 대규모 프로젝트의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어 세계적인 건축가로 위상을 획득하게 하는 발판을 제공한 것이다.

자하 하디드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는데 요소의 해체(deconstructive)와 구축적(constructive) 구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분해된 것들을 단순한 윤곽선으로 통합하기 시작했다. 마치 인상파화가의 그림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여러 개의 윤곽선이 보는 과정에서 점차 집결되며 시각의 영역에 포착되듯이 형태를 부풀리며 여러 겹의 분해된 선들을 단순한 선형으로 합체하는 형식을 추구한 것이다.

부풀린 형태속에 감추어진 다양한 면들과 공간은 예측하기 힘든 깊이감을 제공하고 부유하는 듯한 공간 속에서 부상하고 때론 소멸한다. 여전히 기능적 형태의 윤곽을 따르지 않을 뿐아니라 공간을 담는 선이 불분명하고 원근법이나 기능적 배열을 고집하지 않는, 새로운 건축의 리얼리티를 창조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존의 것을 해체하지 않고 미리 구성하여 보여준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일련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연속성과 유사성은 그가 대상 건축물의 형태를 해체 분해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리 구성한 것이라는 해석에 정당한 근거를 제공한다. 비트라 소방서 같은 소규모 건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표면으로 부상하는 질서”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하 하디드는 디자인 영역을 건축에 제한하지 않고 스포츠용품, 가구, 패션 등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휘몰아치는 듯 움직이는 스트랩(strap)으로 디자인된 운동화와 구두, 헨리 무어의 조각을 보는 듯한 주방가구, 여러 패치로 구성되는 단순한 여성의류 등, 여전히 실용성 측면에서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제품들을 디자인해 선보이고 있다. 전복적인 시각을 제공하며 기존제품들이 보유한 균형감각에 새로운 인식 틀을 제공한다고 인정받을 만큼 독특한 그의 디자인은 소장품으로도 유명하다.

이제 우리도 서울에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알려진 복합 문화공간의 설계자로 서울시에서 2007년 실시한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사업 지명 설계경기에서 1등으로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설계변경을 통하여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공원의 초록색과 건물 마감재에 투영된 푸른색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유동적 형태가 지각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요동치는 인상을 줄 것이라 예상되며, 비트라 소방서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규모는 아니지만 복잡한 동대문 일대를 단숨에 통합하는 도시경관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디테일보다는 관입되는 공간의 시퀀스에서 엮어지는 새로
운 도시 공간, 사물이 광경이 되고 광경이 사물이 되는, 그리하여 주체와 타자의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이 전복되는 도심의 거울과 같은 건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품과도 같은 유연한 선과 뚫어진 구멍을 통한 공간교감(spatial interaction)이 장대한 스케일로 우리의 감성(sensuality)을 유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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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 기사(2010년 10월 19일)에 <클래식의 감동은 유튜브서도 통해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주요 내용은 오디션부터 연습까지 동영상을 통해 진행되는 ‘온라인 오케스트라’에 관한 것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새로운 방식, 즉 최근의 IT 기술을 이용해 공유해 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이 작업은 2009년 1차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온라인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이며 미국 최고 명문 교향악단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중인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이 온라인 오케스트라를 통해 1200년의 전통을 가진 클래식 음악이 첨단 기술 영역으로 올라가는 시도를 하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온라인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지원자 중에서 단원을 선발하고, 짧은 기간(1차의 경우 이틀)의 연습을 마치고 연주회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2009년 4월 뉴욕 카네기 홀에서 가진 1차 연주회는 어느 전문
오케스트라에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차 때는 70개 나라 3000명이 지원했는데, 음악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력의 아마추어들 중에서 90명을 선발했다고 합니다. 2차 연주를 위한 단원은 2010년 11월 28일까지 오디션을 갖고 2011년 1월에 최종 단원 선발한 후, 1주일 정도 연습을 한 다음 2011년 3월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연주회를 갖습니다. 단원 선발 방법은 지정곡을 직접 연주한 동영상을 유튜브(www.youtube.com/symphony)에 올리면 된다고 합니다.


예술과 과학 기술의 관계는 떨래야 뗄수 없는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이나 영화 같이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생겨나는 예술 분야도 있고,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와 같이 첨단 IT 기술을 이용한 표현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에 예시한 ‘온라인 오케스트라’의 경우도 이제 일상화된 첨단 IT기술을 음악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연습하고 감상하는 방법은 과거와 동일 하지만, 그 과정에 IT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연주를 할 수 있도록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첨단 IT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음악 분야뿐만이 아닙니다. 미술 분야에도 적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가진 이이남 화가의 전시회(2010년 10월 20일 매일경제 기사)는 기술과 예술의 통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TV 속에 내장된 이이남 그림 콘텐츠를 선택하면 화면이 멋진 작품으로 변신합니다. 또한 동서양 고전 명화를 재해석한 이이남 화가의 작품들을 아이패드로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작품 3개로 구성된 무료 버전과 2.99달러에 12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료 버전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림은 액자에 걸어서 벽에 걸어놓아야 한다거나, 연주회는 정규 오케스트라만 한다거나 하는 고정관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현재의 그림보다 더 입체적인 그림이 LCD 모니터나 홀로그램을 통해 벽에 장식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림의 가치가 없어진다고 걱정이 되십니까? 그 대신에 그림을 비롯한 예술 작품들이 부담 없는 가격에 우리 일상생활 속에 들어오는 긍정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 작품의 해설이나 거래에도 IT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최근 시도되고 있는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관심이 있는 미술품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그 작품에 대한 정보들(작가, 작품 제목, 가격 등)이 뜨기 때문에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태그(RFID =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을 적용하면 유통 경로와 진품 여부까지도 확인할 수 있어 보다 투명한 미술품 거래가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예술 활동은 과학 기술과 거리가 먼 순수 예술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은 걸까요? 이제 과학 기술은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더욱 차원 높은 예술 활동을 원하신다면 이제는 과학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가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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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빚고 이를 보며 스스로 흡족해 했다. 흙으로 빚었으나 그 안에 신의 생령을 불어 넣었기에 신의 영혼을 닮게된 인간. 바로 신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화포에 자신의 생령을 물들여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미술사는 근대 자화상의 시조로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8~1528)를 꼽는다. 뒤러 이전의 화가 치고 제대로 된 자화상을 남긴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왜일까? 자화상은 근대적인 자아의식이 표출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근대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자화상도 일종의 초상화다. 일반적으로 초상화는 고객이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그려달라고 주문해 제작된다. 고객이 남남인 화가에게 자화상을 그려 팔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푼이 아쉬웠을 화가들은 팔리지도 않을 자화상을 그릴 여유가 없었다. 이것이 르네상스 이전까지 자화상이 잘 그려지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르네상스에 이르면 화가는 더 이상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천재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예술가가 신적인 재능으로 충만한 이라는 것을 세상이,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과 돈이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시장에서 화가들의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지위가 오른 화가들도 주문과 상관없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자화상이 초상화의 주요 장르 가운데 하나로 꽃피어나게 된 것이다.

자화상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나다’를 외치기 시작한 화가들. 바로 그들로부터 우리는 역사와 사회,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격렬히 싸우는 영웅의 모습을 본다.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며 영혼과 피를 화포의 씨줄과 날줄에 물들이는 위대한 투사의 모습을 본다.

빈센트 반 고흐(1853~90)는 이와 같은 ‘자기 투사’ 혹은 ‘자기 구현’의 격렬함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의 한 사람이다. 마치
산고를 치르는 임산부와 같이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화포에 싣기 위해 그 어떤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 고흐가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일차적인 이유는 모델을 구하기 어려워서였다. 인물화 연습은 해야겠는데, 모델에게 줄 돈은 없고, 자연스럽게 자화상을 그리게 되었다.

동기가 어찌 되었든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다른 모델을 그리는 것과 심리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화포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다른 모델을 그릴 때와는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너는 누구냐?”

어떤 화가도 모델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화가에게 모델은 모델로 인지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대면한 화가는 불현 듯 “너는 누구냐?”라고 묻게 된다. 누구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반 고흐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이 헤어나기 어려운 질문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마침내 귀를 자른 뒤 그 처절한 모습까지 화포에 담았던 반 고흐. 그 그림을 보노라면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당신들이 도대체 나의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하는 항의가 들려오는 듯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있듯 인간은 자신을 후대에 전하고자 노력한다.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하지만 매일 보는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 그것은 그림의 의미를 넘어 자의식과 욕망을 분출하는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평생 집요하게 던진 다른 유명한 화가로는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54)가 있다. 칼로 역시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 그림들에는 늘 남성과 여성, 서구문명과 인디오문명,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이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다. 둘로 나뉜 세계,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갈등하는 자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칼로는 유럽계의 피와 인디오의 피를 함께 이어받았다. 전통사회의 문화에 익숙했으나 남편 리베라와 함께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의 멕시코 망명을 돕는 등 매우 활달한 진보적 투사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또 남성 위주의 사회 현실에서
여성 예술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이런 경계선상의 상황들은 칼로로 하여금 평생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게 했다. 더욱이 여러 차례의 사고 경험으로 육체적인 장애를 갖게 된 칼로는 늘 예민하게 내면의 갈등에 반응했고 그것을 그대로 자화상에 담았다.

각각 서양식 드레스와 인디오 의상을 입은 두 여성의 이미지로 자신을 그린 <두사람의 프리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사이에 서서 미국 산업문명의 힘과 사라져 가는 멕시코의 전통을 대비해 본 <멕시코와 미국 국경 사이에 선 자화상> 등은 예의 분열하는 자아를 잘 드러내 보인 작품들이다.

그런가 하면 여러 개의 화살을 맞고 숲 속을 뛰어가는 사슴으로 자신을 묘사한 <상처 난 사슴>은 그런 분열과 갈등이 초래한 극한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쨌든 이들 작품에서 엿보게 되는 모든 갈등과 고통은 그녀가 여성이어서 더욱 증폭된 면이 있다. 여성이었기에 그녀는 사회로부터 더욱 무시되고 소외되었다. 그 한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더욱 강렬한 표현형식에 담아 표출하게 했다. 이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자존감의 발로였다.

이런 자존감의 표현은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보티첼리는 자존심의 표현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그가 30세 무렵에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는 자신만만한 젊은이로서 자신의 모습을 은근슬쩍 끼워 넣은 작품이다.

그림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주제에 맞춰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기 바쁜 와중에 관자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 사람이 하나 있다. 화면 맨 오른쪽에 그려진 청년이 그 사람이다. 바로 보티첼리다.

먼 옛날 성경 이야기의 등장인물로 자신을 그렸지만 그림을 밖을 쏘아보는 그의 눈빛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한 자부심으로 빛난다. 그는 자신을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려 파는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나름의 재능으로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조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금 그의 모습은 매우 도도해 보인다. 도도한 그는 이 그림과 관련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이 작품처럼 우아하고 감동적인 걸작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나, 보티첼리말고 누가 이렇게 위대한 명화를 그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어떤 오만함에도 값할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그는 지금 이렇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의 정도와 관련해서는 보티첼리의 바로 뒷세대인 미켈란젤로(1475~1564)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는 심지어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를 그리라는 교황의 요구를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반항아였다. 당시 교황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거의 죽음을 자초할 만한 일이었다.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그러나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징벌로 제재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천재를 다시 찾을 방도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함부로 그를 다치게 했다가는 여론이 안 좋아질 만큼 그는 위대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은 기고만장한 모습일 거라 지레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그의 불후의 걸작 <최후의 심판>에 그려 넣은 자신의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다. 아마 그림으로 그려진 인간의 모습 중 이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없는 존재의 모습이 이 그림에 그려진 그의 이미지가 아닐까.

<최후의 심판>을 보면 예수의 바로 오른쪽 약간 아래에 수염이 난 대머리 노인이 있다.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있는 이 노인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했다는 성인 바르톨로메오다. 그의 왼손에는 벗겨진 살가죽이 들려 있는데, 그 모습을 자세히 보면 바르톨로메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모습을 거기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벗겨진 살가죽만도 못한 인간. 그는 자신을 그렇게 묘사했다.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 앞에서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철저한 자기반성과 회개를 담았다. 그렇게 자부심이 강했던 그가 이렇게 스스로를 낮췄다.


자화상 안에는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예술가들의 자기 평가가 들어 있다. 지고지순한 영혼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민낯의 ‘생얼’이 있다. 자화상을 감상하는 것은 그러므로 가장 진지하고도 열정적인 예술가의 독백을 듣는 것이다. 그 독백이 그들을 더욱 잘 이해하게 만들어주고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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