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힘을 다해서 노래하면, 관객도 죽을 힘을 다해서 들어줍니다”
사람에게는 인생의 전환기가 되는 사건이 몇 번 있게 마련이다. 태어남 자체가 인생을 결정짓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영어 표현으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그런 경우다. 살아가면서 학교나 취업, 결혼, 또는 예상치 못 한 ‘귀인’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기가 되고 새로운 기회를 주기도 한다.
소리꾼 장사익 선생에게는 친구들이 마련해준 공연 무대가 그랬다. 직장생활을 25년간 하면서,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그였다. 그러다가 94년에 친구들이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장사익 노래 무대를 마련해줬다. 100석 규모의 ‘예극장’이었는데 400명이 몰려왔다. 표는 한 장에 만원씩 팔았다. 이틀 동안 800명이 와서는 서서 노래를 들었다. 그 첫 공연은 장사익 선생에게 인생의 전환기였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노래가 되었다. “그 때 이후로 제 인생이 이렇게 노래 부르면서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늘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이 저의 일부였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서 사니 얼마나 행
복합니까? 내 길이 노래입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장사익 선생은 우리나라의 소리와 색깔을 가장 한국답게 내는 소리꾼이다. "중국 노래를 들으면 웬지 짜장면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인도 노래를 들으면 카레 냄새, 일본 노래를 들으면 단무지 냄새가 납니다. 가사를 몰라도 그렇죠. 제 노래를 들으면 웬지 된장 고추장 냄새가 날 겁니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걸 겁니다.“
그는 2007년에 미국 4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을 했다. 티켓은 다 매진되었다. 그리고 2010년 오사까 공연에서도 1500석 규모의 NHK홀이 다 매진되었다. 우리말 가사를 몰라도, 장사익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진한 된장 고추장 냄새는 외국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에서 나오는 감성의 절규를 외국인들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오사까 공연에 장사익 선생님, 공연팀들과 2박3일을 동행했다. 재일교포70%, 일본인 30% 정도가 관객으로 공연을 보러 왔다. 공연 도중에 엉엉 우는 관객도 꽤 많았다. 일본 관객들에 대해서 장사익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재미동포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재일동포는 일본인입니다.일본인처럼 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죠. 하지만 그들의 속에는 한국인이 들어 있습니다. 제 노래를 들으면 뭔지 몰랐던 한국인이 살아나나 봅니다.”
일본 사람인 것처럼 살아 왔지만 한국인의 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사익의 노래를 들으면 울컥하는 뭔가가 있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 ]다. [ ]안에 무슨 말이 들어가야 할까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이 이렇게 나왔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혼]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귀신]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굿판]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삶]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바다]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활력소]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한국의 힘]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액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돈]이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머리가 쭈뼛 선]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시상이 떠오른]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가슴이 저리고 뭉클하]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노래방에서 절대 못 따라 부른]다.
장사익 선생의 그 노래는 어디서 나오는지, 노래하실 때 어떤 마음이신지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저는 노래 부를 때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내가 그리는 세계를 보면서 노래합니다. 관객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관객을 보는 순간 가사를 잊어 버립 니다. 관객이 3천명이면, 그 3천명과 나 하나가 합일이 됩니다. 3000+1=1 인 거죠. 내가 노래로 살짝 잡아당기는데 3천명이 따라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3001명이 하나가 되는 걸 몸으로 느끼는 겁니다. 만약 노래하는 사람이 잡아당기는데 그 3천명이 안 온다? 그러면 무대에 선 사람 몸이 3천개로 분해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전혀 공감을 못 얻는 거죠. 관객의 간절한 기대가 뭔지, 바램이 뭔지, 그걸 알고 그 ‘기’를 모아야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죽을 힘을 다해서 노래합니다. 그러면 관객들도 죽을 힘을 다해서 들어줍니다. 노래하고는 다른 이야기지만, 정부 정책도 ”가자“ 하고 나서면 국민들이 딸려 와야 됩니다. 하나로 묶어주는 마음의 기운이 있어야죠. ‘기’가 모여야 같이 갑니다. ”
그의 노래를 듣는 관객들은 하나가 된다. 국악이나 창을 좋아하고 안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장사익은 유행가도 영혼의 창처럼 부른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노래방에서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사람이 ‘좋아 한다’ 이야기를 안 해도 좋아하는 줄을 알지 않습니까? 빨간 노래는 빨갛게 불러야 됩니다.
노란 노래는 누르스름하게 들려야죠. 슬픈 노래는 가사를 못 알아 들어도 슬프게 느껴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 외국에서 이방인의 영혼도 잡아 끈다. 뉴욕의 링컨 센터에서 처음 공연을 할 때는 서러움도 겪었다고 한다. 링컨센터를 빌리기는 했는데, 그 곳의 음향기사나 스탭들이 영 무시하더라는 거다. 장비도 거의 만지지 못 하게 하고, 마이크도 제대로 설치해 주지 않았다. 해금, 기타, 피아노, 베이스, 북, 아카펠라 그룹, 이런 모든 공연자들에게 하나씩 마이크를 세워야 하는데, 장사익 선생 앞에만 마이크 하나를 세우더란다. 다른 백그라운드 소리에 마이크를 다 갖다 대면 주인공 노래가 죽는다며 마이크를 안 세워줬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를 못 들어보면 그런 말을 할 법도 하다. 그래서 무조건 알아서 하겠다며
마이크를 다 세웠다.
그날 저녁, 링컨센터를 꽉 채운 관객들은 환호와 감격의 기립박수를 보냈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링컨센터 측에서 찾아와서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정식으로 링컨센터에 초청해서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국내 공연 때마다 다 매진이 되고, 미국 4개 도시, 8개 도시 공연 두 번, 일본 공연, 이란 공연, 이렇게 외국 공연도 다 매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떼돈을 벌고 빌딩을 샀을 거라고들 생각한단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가 못 하다. 장사익 선생은 기업의 협찬을 받지 않는다. 기업에서 협찬을 받고 표를 100장, 200장씩 나눠주면 그 표가 다 엉뚱한 사람들에게 뿌려진다. 장사익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초대권 받고 와서 앉아 있으면 공연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표를 다 1장, 2장으로 판매한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 와도 초대권을 주지 않는다.
그의 노래를 정말 듣고 싶은 관객들에게만 한두장씩 표를 판다. 기업의 협찬을 안 받다 보니, 낱장 표를 팔아가지고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미국 순회 공연 두 번 하고 나서 수억 원의 빚을 졌다. 표가 다 매진되었는데도 그 엄청난 비용을 당할 수가 없었다. 링컨센터 대관료가 5천만원 가량, 그곳 현지 스탭들 인건비만 9천만원이 들었다. 표를 다 팔아도 수입이 1억6천만원인데,공연팀들 비행기값을 대기도 모자랐다. 그래서 집을 담보로 잡혔다.
외국에 나가서 한국의 혼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소리꾼인데, 정부의 지원을 받을 길을 더 개척하시면 어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정부 지원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작년에 문화관 광부에서 1천만원 지원을 받았는데, 어찌나 서류가 많고 복잡하던지 스탭들에게 “다시는 지원받지 말라”고 했단다.
그는 고집스러운 예술가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려고 돈 내고 온 관객 앞에서만 노래한다. 돈 내고 온 관객들은 뭔가 찾으려고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 기업에서 와서 노래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와도 가지 않는다. 개인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이 자신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 가수 중에는 나훈아씨가 개인 잔치에 가서 노래 부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개인 잔치에 가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는 예술가들이 있기는 하다.
그는 방송에도 안 나간다. 인터뷰는 몇번 한 적 있지만 방송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음악은 비디오가 아니라 오디오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디오는 유한하지만 오디오는 무한하다고 믿는다. 텔레비전에 얼굴이 자꾸 나오면, 보는 걸로 끝나는 가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TV에 나가지 않는다.
“얼굴이 알려지면 때가 묻어요. 사람냄새가 없어지죠. 폼 잡기 시작하고... 대중 속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게 저한테는 맞습니다.”
그래서 그는 피날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 때에도,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관객 속에서 공연을 보면서 기다리기도 한다.
그의 노래에는 작사가 뒤에 ‘장사익 엮음’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작곡’이 아니라 ‘엮음’이다. 그는 시를 읽을 때 낭송을 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시를 수없이 낭송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된 다. 그래서 ‘엮음’이다. 노래는 우선 노랫말이 좋아야 된다고 말한다. 노랫말이 좋은 노래는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노랫말이 안 되면 노래가 아니다. 그래서 노랫말이 형편없는 요즘 노래를 노래로 치지 않는다.
“대꽃이 100년 만에 피고”라는 싯구가 있었다. 그는 이 싯구를 낭송하면서, 대나무꽃은 100년에 한번 피는데 사람이 평생 살며 어떤 꽃을 피우게 될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또 노래 하나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만든다. 장사익 선생의 공연에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그는 온 몸의 피를 토하듯이 노래한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탈진이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사까 공연에서 그렇게 2시간 넘게 노래를 부른 후에도 그는 멀쩡했다.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공연 후 뒷풀이 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앉아 있는데 계속 걸어 다니며 뒷풀이를 지휘(?)했다.
“공연은 다 쏟아 붓는 겁니다. 신나게 원 없이 털어내는 거죠. 밧데리를 다 방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채웁니다. 공연은 즐기는 거죠. 즐기지 못 할 때 생명력이 죽어요. 돈만 생각하면 죽습니다. 여기저기 밤무대 다니며 돈벌이로 노래하면 에너지가 다 사라집니다.”
이렇게 즐기면서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그의 뒤에는 부인 고완선씨가 있다.
예술가 뒤의 내조자 자리는 힘들다. 예술경영 석사를 한 그녀는 돈을 모르는소리꾼 남편을 대신해서 표를 팔고 다닌다. 뉴욕에서 공연을 할 때, 누군가 허름한 한인 식당에서 표를 몇 장 팔고 있더란다. 누군가 봤더니 부인 고완선씨였다.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놀란다. 부인의 그런 내조와 열정이 미국 순회 공연, 일본 공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오사까 공연에는 팬카페 멤버들도 한국에서 20여명 날아왔다. 이름하여 ‘장사모(장사익을 사랑하는 모임)’다. 팬 카페 회원은 1만 2천 명 정도 된다.
신년 정기모임, 여름 정기모임을 한다. 단지 장사익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줄기차게 모이는 것이다. 해외 공연에는 자신들이 돈을 다 내서 찾아온다. 오사까 공연에도 다들 똑같이 노란 티셔츠를 맞춰입고 나타났다. 오사까 공연에 한국에서 온 단체 열성팬들이 있었으니, 스님들이다. 스님들 50여 명이 한국에서 왔다. 한국 공연에는 전국 절에서 늘 100-200여명의 스님들이 오신다고 한다. 장사익 선생의 ‘티켓 파워’ 뒤에는 이런 열혈팬들이 있다. 한국의 소리 하면 대표선수가 장사익 선생이다. 그만큼 해외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보는 문화 전파는 어떤 것일까?
“문화는 밑에서부터 탄탄해져야 되는겁니다. 뿌리가 탄탄한 삼각형이라야 넘어지지 않죠. 그런데 그런 문화 전파를 억지로 위에서, 정부에서부터 하려고 하면 삼각형이 거꾸로 됩니다. 위는 큰데, 밑이 작은 삼각형은 넘어지게 마련이죠. 문화라는 건 위에서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국 대표 선수의 경험에서 나온 이런 분석을 정부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심각하다. 그런데 그의 일상은 유쾌하다. 공연이 끝난 날, 같이 갔던 아카펠라 그룹, 해금, 북, 베이스, 등 공연팀 30여명은 헤어지면서 이렇게 외쳤다.
“형님, 주무십시오.”
“그래, 취침 실시!”
공연팀 멤버가 귀띔해준다.
“장사익 선생님은 생활 자체가 코미디 처럼 웃겨요.” 名人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던 오사까 공연 동행이었다.
인터뷰·글_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역임. SBS TV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열린 TV 시청자 세상‘을 4년 동안 진행했다. ‘커뮤니케이션 불변의 법칙’, ‘대중을 매혹하다’, ‘글쓰기의 기술’, ‘매력적인 말하기’ 등 커뮤니케이션 전략 관련 책을 6권 썼
다.
http://www.ideaocean.org
사진_김녕만 (월간사진예술대표)
뉴스보이 Arts & Culture (http://www.artsnculture.com/)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뉴스보이]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