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결산 (상)
한국의 스포츠 르네상스
1. 한국, 르네상스를 열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2008 베이징올림픽은 한국에 있어 스포츠 르네상스로 기억될 대회. 금메달 13개에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 총 31개의 메달에 종합 7위를 기록하며 당초 텐텐 목표를 상회했다. 금메달 수만 놓고 보자면 지난 서울 88올림픽의 12개를 능가하는 사상 최고의 성적. 20년만에 쓰여진 기록이다.(다만 종합순위와 총 메달 숫자에선 당시의 4위와 33개 기록이 여전히 앞선다) 한국 스포츠의 신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2. 긴장했던 태권도, 결국 순도 100% 황금 풍작
▲ 태권도 금빛 발차기!
대회 후반에 개막한 태권도는 한국의 종합 순위를 주목하는 국내 스포츠팬들에 있어 각별한 종목이었다. 당시 금메달 8개를 달리고 있던 한국이 당초 목표했던 10개의 금메달을 확보하려면 사실상 태권도가 그 마무리를 해줘야 했던 것.
그런데 태권도의 금 사냥을 전망하던 언론들은 대회 전부터 국민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미국 로페스 가문에 대한 경계심을 유발하는 한편 각국의 실력이 평준화돼 자칫하면 종주국의 자존심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음을 밝혔던 것이다. 지난 2004년 아테네 때 한국은 금메달 2개를 따내며 이름값을 했지만 한편으론 '반타작'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나온 바 있었고 여기서 위기론이 거론됨에 따라 이같은 우려는 힘을 또한번 받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기우였다. 한국은 출전한 4체급의 선수 전원이 정상에 올라 오리지널의 명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의 목표 초과달성에 신바람을 불어넣은 건 말할 것도 없다.
3. 한국 양궁에 얽힌 괴담? 너무 강해 죄송합니다
▲ `신궁불패`
한국 양궁은 단체전에서 남녀 모두 금메달을 획득, 무적의 아성임을 또한번 확인시켰다. 여자는 6연패, 남자는 3연패의 쾌거.
단체전에서 이같은 성과가 나오자 외신에서 놀라움과 경외의 눈빛을 보낸건 당연지사. 특히 중국에선 경외하다 못해 괴담 수준의 유언비어가 번졌다. 중국의 한 인터넷 매체는 한국 양궁 선수들에 대해 시체 검사를 포함한 '미친 훈련 패키지'가 있음을 소개했다. 내용을 보면 믿거나 말거나 수준. 이는 한국에도 소개됐다.(http://sports.media.daum.net/nms/general/news/common/view.do?cate=23793&newsid=664577)
국내 네티즌 반응은 "무협소설을 써라" 정도로 요약.
이후 개인전에선 박성현, 박경모가 각각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턴 국내에서 또다른 괴담이 번지기 시작했다. 빛나는 은메달이었지만 금메달이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네티즌 사이에서 중국이 한국 선수들의 개인전 제패를 막고자 인공강우를 뿌렸다는 설이 나돌았다. 결승 당시 악천후가 몰아쳤던 것이 한국 선수들의 난조로 이어졌다는 주장에 따른 의혹. 이도 결국은 금메달이 당연시 여겨질만큼 막강함을 과시한 선수들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당시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에 일조했던건 날씨보단 '인재'였다. 논란의 호루라기 매너가 그것. 실제로 경기 후 선수들이 이를 지적함에 따라 중국 갤러리들의 방해여부는 의혹이 아닌 사실이 됐다.
4. 울보 왕자와 벽안의 웃보 스타 탄생
▲ 첫번째 금메달을 선물한 최민호
한국의 금맥을 처음 캤던 최민호 선수. 유도에서 화끈한 한판승 5연타로 금빛 업어치기 돌풍을 일으켰던 그는 우승 후 '울보왕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순간부터 시상식때까지 쉬지않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 인간수도꼭지나 다름없었던 것. 세레모니 때도, "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라고 소회를 밝히는 기자회견 때도, 시상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도 그는 어김없이 눈물바다를 연출.
반대로 결승상대였던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 선수는 웃보였다. 한순간의 아쉬운 기색을 지우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여 언뜻 보기엔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듯한 모습이었다. 재미있는건 최민호 선수 못지않게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한 것. 잘생긴 외모에 최민호를 다독여주는 매너까지 겸비해 팬카페까지 개설됐다. 한국 선수와 대결한 외국 선수가 인터넷 스타에 등극하는 초유의 광경이었다.
5. "누가 숨고르기 한대?" 포털을 '뻘쭘'하게 만든 남자
▲ `16년 만에 남자역도 금메달` 사재혁
역도선수 사재혁의 홈페이지는 '잡초에 꽃을 피우려'란 타이틀을 걸고 있다. 자신 스스로를 주목 받지 못하는 무명의 선수로 칭한 것. 그러나 꽃을 피우려 한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듯 잡초인생을 한번에 뒤집는 미라클 스토리 또한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포털 다음은 그런 그의 시나리오를 도와줬다. 그의 결승전이 있던 13일, 일찌감치 대문에다 '한국이 금메달 사냥을 일단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간다'는 어느 매체의 분석기사 제목을 내걸었던 것. 첫날부터 5일간 이어졌던 꿈같은 금빛 레이스였지만 이날은 딱히 금메달 후보감이 없었던 탓이다. 기대를 걸었던 전날의 이배영 선수가 부상 불운을 당했던 것 또한 상대적으로 사재혁 선수에 대한 기대감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으리라.
그런데 밤이 되자 곤란한(?)일이 벌어졌다. 사재혁은 한국의 금메달 릴레이를 엿새째 연장시켰다. 직후 메인에 오른 한 기사의 앞 구절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됐으나..."는 전후상황을 아는 사람에 있어선 실소할 부분. 적은 물론 아군까지 속여버린 통쾌한 금메달이었다.
6. 힘의 신 로즈란
▲ 힘의 신 로즈란
대회 종료 직전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같은 우스개소리가 등장했다.
"물의 신 펠프스, 바람의 신 볼트, 힘의 신 장미란, 븅신 호시노."
나머지 셋은 차후 소개, 아무튼 장미란은 세계가 인정하는 근력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대회에서 그녀가 보여준 '포스'는 압도적이란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경쟁자는 커녕 용상에서 십수킬로그램 내에 근접하는 도전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따라서 맨 마지막에 등장, 홀로 세번을 연달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세번 다 연속 오케이. 첫번에 금메달을 확정짓고 연거푸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괴력이었다.(두번째 시도에서 수립한 세계신은 탄생한지 불과 2, 3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 비운을 맞았다)
경기 후 사람들은 그녀에게 '로즈란'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선사했다. 외모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매력덩어리 여전사였다.
7. 이젠 수영 볼 맛 나네... 박태환의 신세계
▲ 한국최초의 수영종목 금메달리스트
육상과 더불어 올림픽의 메달밭으로 불리는 수영종목. 그러나 이 기초종목은 한국에 있어 초대받지 못한 축제였다. 흑백영상으로 조오련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장면을 추억할 뿐, 그야말로 넘보지 못할 세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숱한 판타지를 써내던 만화 속에서도 한국인 수영 영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만화에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하니가 100미터 달리기 우승 테이프를 끊고 유비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시켰다. 또 의문의 축구선수 빵봉투가 권투선수로서 세계챔피언까지 먹었던게 지난 80, 90년대. 그러나 한국에서 히트한 만화 중 수영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영웅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이는 어지간한 만화 매니아들도 금시초문.
그랬기에 박태환은 신세계의 사람이었다. 한국최초의 수영종목 금메달리스트, 아시아 최초의 자유형 금메달리스트... 뿐만 아니라 400미터 금에 이어 200미터에서도 은메달을 추가, 명실공히 전천후 자유형 강자로 우뚝 서 "아시아인도 자유형이 되는구나"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8. 만년 신혼 진작가의 '아내에게 바치는 금메달'
▲ 신혼 진작가의 '아내에게 바치는 금메달'
사격 공기권총 50미터 금메달, 10미터 은메달에 빛나는 진종오의 미니홈피를 들어가 봤는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축하글을 남겼지만 박태환, 최민호 등 타 금메달리스트에 비하면 어째 숫자가 적은 듯한 건 왜일까. 혹시 옆구리 시린 솔로 방문객이라면 축하해 주러 들어왔다가도 그냥 나갈법한 닭살 신혼 분위기가 홈피 전반에 만연한 게 원인이 아니었을지.
실로 미니홈피에서 펼쳐지는 아내에 대한 세레나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년전 맺어진 부부가 아직도 이만한 신혼 분위기라면 한동안 관리가 안 되었거나 아님 만년 신혼이거나 둘 중 하나. 하지만 네티즌들에 공개된 미니홈피에 저 정도로 자신있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끼'는 주목할 부분.
한편 그는 지난 아테네에서의 격발 실수에 이어 이번 경기에서도 막판에 8.2점을 쏴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 금메달 소식을 전하던 캐스터가 '일부러 연출한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네티즌들은 "진작가"라며 그의 짖궂은 드라마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9. 한국 야구 "이래도 운이라 할거야?"
▲ 9전전승의 완전무결 스토리 한국 야구
한국 야구팀은 예선리그 전부터 때아닌 부담에 휩싸였다. 자신들과 더불어 기대를 모았던 축구대표팀이 예선리그에서 주저앉자 네티즌들은 "축구장에 물 채워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는 비단 축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지원이 이뤄지는 인기종목에서의 부진, 그리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 속에서 분전하는 비인기 종목이란 요소가 결합되면서 인기 종목은 성적부진에 대한 화살을 피할 수가 없게 됐고 야구대표팀 또한 "너네도 못하면 야구장에 물채운다"는 네티즌의 으름장을 시작 전부터 들어야 했다.
한국 야구의 승전보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역사였다. 예선 첫경기에서 최강팀으로 꼽히던 미국과 맞닥뜨려 9회말 극적 역전승을 일궈내더니 아시아 지존을 자처하는 일본에게도 역전승, 그간 단한번도 이기지못했던 쿠바에게도 역전승... 이어지는 역전승 퍼레이드로 그렇게 세계최강팀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가더니만 어느새 7전전승. 예선리그에서 그 어느 적에게도 승리를 내주지 않는 진기록을 세웠다.
준결승에선 일본과 다시 맞붙었다. 여러모로 거북한 상대였다. 월드베이스볼에서도 삼세판의 이상한 인연으로 얽히더니 결국 준결승에서 아쉬운 패배, 결국 일본은 우승했고 '죽쒀서 개줬다'는 웃지못할 말들이 나돈 바 있다. 실제로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선 예선 패배에도 "괜찮아, 한국은 어차피 중요한 경기(결승토너먼트)에선 져"와 같은 말들이 돌았고 호시노 일본 감독은 줄곧 자극성 멘트를 꺼내왔다. 여기에 일본과 미국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준결승 상대를 한국으로 고르고자 고의로 미국에 져 줬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민들의 승리 기원은 '기본 옵션'인 반일감정을 넘어선 무언가가 됐다. 반대로 한국선수들에 있어선 부담감이었다. 월드베이스볼 때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은 악몽과도 같았다.
그러나 한국은 예선 때보다 더 큰 스코어로 일본을 격파했다. 9회말 마지막 수비에서 이용규가 플라이 아웃을 잡아내고 기도에 들어서자 감동은 배가됐다. 호시노 감독도 "더이상 한국을 약하다 말라"며 운이 아닌 실력임을 인정했다.
결승 상대는 쿠바. "이번엔 어려울 걸"이란 비아냥을 비웃듯 한국은 이번에도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승자로 남았다. 일본과 쿠바를 두번 다 격파, 미국도 넘어서면서 9전전승의 완전무결 스토리를 엮었다. 9회말 터진 심판의 석연찮은 행동까지 극복했기에 더 이상 "운으로 이겼다"란 폄하는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한손엔 일장기를, 한손엔 쿠바국기를 들고 쿠바를 응원하던 일본관중들은 고개숙인 들러리가 됐고 경기 때마다 한국 상대팀을 응원하며 반한감정을 표하던 중국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열세번째이자 마지막 금메달은 어쩜 올림픽 야구의 마지막 신기원으로 남을지 모른다. 런던 올림픽부턴 일단 대가 끊겨 향후 최소한 8년간은 공백으로 남는 것. 결과적으로는 이 또한 한국야구의 금자탑을 빛내는 또하나의 극적 요소였다.
이제 네티즌들은 "축구장에 물 빼고 베이스 박아라"는 농담을 꺼낸다. 축구 선수들에 있어선 굴욕적인 발언이지만 그보단 야구 선수들에 대한 경의가 먼저 묻어나는 표현이다. 새로운 야구장 건설과 전폭적 지원 등을 주장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어 추후가 더 기대되는 한국 야구다.
덧글 사진 제공= 스포츠 코리아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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