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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은 이 미친 사랑을 통해 대작을 탄생시키기도,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예술가의 사랑 이야기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끈다. 우선 사랑 이야기 일반이 주는 흥미와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정열이 그 안에 녹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주는 흥미가 그것이다. 예술가들은 일반인에 비해 보다 자유롭고 정열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사랑의 행로를 따라가 보는 것은 그러므로 곧 잘 그들의 예술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 된다.

 

빅토리아 여왕에게 퇴짜 맞은 밀레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초상화가로 당대 최고의 대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가 천거되자 이에 대해
퇴짜를 놓았다. 밀레이 앞에서는 모델을 서기 싫다는 것이었다. 왜 여왕은 이 정상의 화가를 배척했을까?

그것은 밀레이가 그림을 그리던 도중 유부녀인 모델을 유혹해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모델로 세웠던 유부녀를 아내로 삼았다고 하니 밀레이라는 화가가 꽤나 바람둥이처럼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정을 듣고 보면 밀레이가 꼭 바람둥이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밀레이가 그린 그 운명의 여인이 어떻게 생겼나보자. 그림은 시인 존 키츠의 ‘성 아그네스의 전야’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성 아그네스의 전야’는 젊은 연인이 벌인 열정적인 사랑의 도피에 대한 묘사로 유명하다.

그림의 주인공은 지금 어두운 방에서 조용히 옷고름을 풀고 있다. 화려하고 근사한 방이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과 여인의 표정이 왠지 애잔하고 적막한 느낌이 든다. 여인은 벌써 겉옷을 벗었다. 풀썩 주저앉은 그 겉옷은 그녀의 무릎께에 둘러 있다. 머리끈도 풀려 삼단 같은 머리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이제 손은 보디스에 가 있다.

그녀는 이처럼 자신의 체온을 지켜주던 꺼풀들을 하나씩 벗어버리고 있다. 그럴수록 그녀의 몸에 더욱 뚜렷이 떨어지는 달빛은 여신을 지키는 님프처럼 은밀하고도 부드럽다. 달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인, 님프들도 탐낼 수밖에 없는 여인, 바로 그런 비밀스럽고도 아리따운 여인으로 그림 속의 여주인공은 서있다.

여인의 이름 에피다. 에피는 1848년 유명한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과 결혼했다. 불행히도 결혼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부부 사이의 결정적인 문제는 남편인 러스킨에게 있었다. 그는 결혼 6년이
다 되도록 에피와 아무런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했지만, 남편이 계속 잠자리를 기피함에 따라 에피는 점점 깊은 정신적 공황으로 빠져들었다. 러스킨은 아이를 갖는 것이 싫고, 또 임신으로 에피의 건강이 상하게 될까봐 그런 것이라고 에피에게 변명했다.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이었다.

그가 이처럼 아내와의 관계를 기피한 것은 사실은 그에게 심각한 성심리적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에피가 관계를 갖게 될 때 무엇보다 그녀의 벗은 몸에서 체모를 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자신이 그동안 찬탄해마지 않았던 우아하고 위대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과 달리 체모가 있는 아내의 국부는 그를 극도로 실망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그 두려움이 끝내 아내를 멀리하게 한 핵심적인 원인이 었던 것이다.

에피는 이 사실을 1853년 러스킨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던 밀레이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밀레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까지 두 사람사이에는 연인으로서의 진정한 사랑과 신뢰가 필요했다.

둘 사이의 사랑과 신뢰는 서로 오랜 세월 알아온 데다 모델을 서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피어난 것이
었다. 결국 에피는 러스킨과 이혼했고 밀레이와 재혼했다. 졸지에 밀레이는 우정을 버리고 친구의 여자를 낚아챈 남자가 되었다. 비록 여왕을 비롯한 세인들의 비판적인 시선을 감수해야 했으나 두 사람은 보란 듯이 슬하에 4남 4녀를 두고 40년 간 해로했다고 한다.

 

   
 
   
과도한 사랑으로 목숨을 잃은 라파엘로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로는 자신의 정부 마르게리타루티를 모델로 <라 포르세리나>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서 여인은 수줍은 듯 손을 가슴께로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손으로 가슴을 다 가리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오히려 양쪽의 젖가슴이 도드라져 보인다. 손에 딸려온 천은 가슴 아래쪽의 배를 가리고 있지만, 워낙 투명한 천이어서 배꼽이 그대로 비친다. 허리 아래는 두터운 천을 둘렀는데, 왼손을 다리 사이에 가져감으로써 전형적인 정숙한 비너스(베누스 푸디카)의 자세를 만들고 있다. 스스로가 고결한 여인임을 애써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관능과 정숙의 대위법적 긴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여인의 눈은 관객을 향하고 있다. 살짝 미소를 띤
채. 그러나 그녀의 다정한 시선과 미소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화가를 향한 것이다. 여인이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관능과 정숙의 뉘앙스를 동시에 풍기는 것은 이처럼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남자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는 “나를 품어 안아 주세요. 나는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마르게리타는 로마의 산타 도로테아에서 제빵사 프란체스코 루티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라 포르나리나
(제빵사의 딸)’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은 물론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다. 라파엘로는 로마에서 일한 12년 동안 정부를 곁에 두었는데, 마르게리타가 바로 그 여인이라고 전해져온다.

이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큰 의심 없이 믿어져온 사실이지만, 그 관계를 명백하게 확인해줄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마르게리타와 라파엘로 사이의 사랑은 화가와 모델 사이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하나로 미술사의 이 골짜기 저 언덕에서 칭송되어왔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바자리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사랑놀이를 과하게 즐기는 습관이 있
었다고 한다. 어느 날 보통 때보다도 더 무절제하게 사랑놀이를 펼친 라파엘로가 펄펄 끓는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려온 의사는 그의 과도한 섹스 사실을 모르고 몸을 식히기 위해 우선 피부터 빼는 부주의한 처치를 했다. 노총각 라파엘로가 사랑의 과로를 결코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라파엘로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어 버렸고 마침내 영원한 휴식을 맞았다. 그가 태어났던 날인 부활절 전 성 금요일에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면 때 그러나 마르게리타는 침상곁을 지키지 못했다. 부적절한 관계의 여인이라는 이유로 성직자들로부터 내쫓겼기 때문이었다.

 

비극적 사랑의 결말 모딜리아니

기다란 인물상으로 유명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그녀의 아내인 잔 에뷔테른의 사랑 이야기도 미술사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연시의 하나다.

3년여의 세월 동안 모딜리아니와 잔은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에 크게 기뻐하고 아파했다. 비록 두 사람의 이른 죽음으로 짧은 사랑의 궤적을 그리고 말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늘날까지 아련한 메아리로 남아 있다.

곱게 자란 잔의 부모는 두 사람의 결혼을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부부가 되었다. 모딜리아니가 병으로 죽지만 않았어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11월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침대로 뛰어들어 모딜리아니의 주검을 으스러질 듯 껴안았다고 한다. 임신 8개월의 그녀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주검에 들러붙자 사람들은 강제로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녀는 먹이를 문 맹수처럼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와 모딜리아니를 갈라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한참의 통곡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스스로 그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모딜리아니의 장례를 준비하던 그들은 또 한번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잔이 친정 부모의 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힘겹게 부부가 된 두 사람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데 대해 슬퍼하지 않은 파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사실을 통해 사람들은 깨달았다. 두 사람이 설령 지옥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서로를 비추는 진실한 빛이 있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잔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 그 빛의 동력이 됐다.

모딜리아니에게 잔은 영원한 구원의 여인이었다. 죽음의 나라까지 동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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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테크닉과 자유로운 연주의 예술가

   
 
   
 

풋풋한 미소가 싱그러운 젊은 첼리스트를 만났다. 중국 상해에서 첼리스트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음악은 운명이 었다. 199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 1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음악 경연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음악계에 그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01년 뉴욕 나움버그 음악 콩쿨 1위를 차지하고 호주 방송협회가 뽑은 그 해의 젊은 음악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올해의 젊은 오스트레일리아인상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지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서 영향력있는 첼리스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음색과 완벽하게 균형잡힌 인토네이션, 철저한 테크닉을 모두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는 리-웨이 친. 2010 서울 국제 음악제에서 의 공연을 마친 그를 만났다.
Q 어떻게 처음 첼로를 시작하게 됐는가?
아버지는 첼리스트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로 부모님이 모두 음악가셨는데 내가 먼저 시작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피아노는 음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악기이기 때문에 두 분은 나에게 먼저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해외공연으로 외국에 나가계셨을 때 아버지가 작은 미니첼로를 선물해주셨다. 나는 그 첼로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악보도 한 줄로 되어 있어 네 줄로 된 피아노보다 보기 쉬웠다. 그렇게 첼로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어린 내가 제법 연주를 잘 했는지 해외에서 돌아 온 어머니는 내 연주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소질이 있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때부터 첼로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피아노를 확실하게 익히고 첼로를 배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한 줄로 된 악보에 익숙해져버려 여러 줄로 된 악보를 보는 것이 어려울 때 가 많다. 때론 다른 연주자들에게 피아노 로 연주를 들려줄 필요가 있는데 이럴 땐 정말 아쉽다.
Q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연주하며 살아왔는데 그렇다면 본인에게 있어 첼로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어떤 순간인가에 따라 대답은 다르게 나올 것이다. 내가 첼로를 연습하고 있을 때는 고된 연습으로 지쳐 슬픔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내가 연주회를 위해 여행을 할 때는 고통이 된다. 첼로를 들고 여행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나 기차에서도 두 개의 자리가 필요하고 짐도 다른 사람의 두 배가 된다. 그러나 연주회를 하면서 첼로의 음악에 빠져있는 나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된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을 때 묻는다면 첼로는 나의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첼로는 나에게 고통이자 슬픔이자 기쁨이자 행복이자 사랑이다.

   
 
   
 

Q 가장 인상에 남았던 연주회는 언제인가?
예전에 이스라엘에서 연주회를 가졌던 적이 있었다. 연주회일행은 이스라엘 공연 전에 팔레스타인에 들려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은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가서 무대의 배경으로 장식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관객들은 무대위의 그림에 대해 칭찬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그 그림이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자 관객들은 굉장히 화를 냈다. 우리는 예상했기 때문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연주회는 많은 의미를 안겨줬다.
Q 한국에서의 공연은 어떠했는가?
정말 열정적이고 뜨거운 반응에 즐거웠다. 아마 한국사람들은 매운 김치를 먹기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반면 일본사람들은 초밥을 먹어서인지 굉장히 정적이다. 나는 한국사람들이 음악회를 즐기는 방식을 좋아한다. 화답하고 호응해주는 모습을 보면 힘을 얻는다.
리-웨이는 현재 싱가폴의 용 시우 토 콘서바토리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로얄 노턴 칼리지에서 첼로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상하이 콘서바토리와 베이징 센트럴 뮤직 콘서바토리의 객원 교수로 있다.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그는 내년에 리사이틀 공연으로 한국을 다시 찾을 계획이다. 정통적인 연주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첼로의 무거운 소리를 경쾌하게 만들어내는 풋풋한 젊은 첼리스트 리-웨이친.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사진_최빛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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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거장의 그늘에 가려 희생과 인내의 시간이 더 많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 또한 예술가라면 그 희생의 몫은 더 크지 않았을까?

민족혼을 간직한 세계적인 예술가로,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조각가로 알려진 문신(1923~1995)의 예술업적이 속속 발굴되고 재조명, 재평가되는 이면에는 그의 예술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해온 예술가 문신의 아내 최성숙 관장(64)의 남다른 노력과 추진력이 한몫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문신이 영광이 보장된 유럽 화단을 뒤로 하고 오랜 외국생활에서 조국으로 영구 귀국해 국내 활동을 시작한 지 30주년, 타계 15주년, 그리고 문신의 대표작 ‘태양의 인간’이 발표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때맞춰 그의 예술을 보존하고 기리는 미술관과 아틀리에가 건립될 예정이고, 세계 석학들과 조각가들이 참여하는 국제 학술대회와 국제조각심포지엄 개최를 앞두고 있어 최관장의 발길은 더욱 분주하다.

지난 9일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의 기념축제 ‘거장의 운명’전(~5.31)을 앞두 고 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필생의 사업, 자료 정리와 디자인 아카데미 설립

“축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좋은 생각만 하고 살려고 합니다.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모아 온 자료들을 정리해서 연구활동의 뒷받침이 되게 하는 게 우
선 과제지요. 대학에서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최관장은 숙명여대 미술관의 자료실에 보관된 문신예술의 자료들, 작품 초기 구상 시안과 작품, 전시자료, 친필원고, 일기, 편지, 활동사진, 해외 각국의 언론에 보도된 신문 기사들, 드로잉 작품 등 방안 가득 쌓여있는 자료들을 보여주며 살아생전 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은 대학미술관 1호로 1999년 연구소가 설립되어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문신아카데미의 본산으로 문신예술의 연구 메카이기도 하다.

숙명여자대학교 이경숙 총장의 제안으로 설립된 미술관은 그동안 문신예술 총괄 관리를 맡아 보존 관리 및 세계적 지평의 확대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문신미술관은 문신과 최관장이 귀국 후 문신의 고향인 마산의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황무지 야산을 깍고 손수 집을지어 설립한 마산시립미술관( '사랑하는 고향 마산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문신의 생전의 유지를 받들어 최관장이 2003년 6월 마산시에 기증했다.)과 숙명여대 미술관에서 기획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 오는 7월, 마산에 문신 원형미술관이 개원하고 연말쯤에는 경기도 양주시에 문신 아틀리에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로서 기존의 마산 시립문신미술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등 4개의 문신미술관이 전국에 세워지게 된다.

아울러 문신 원형미술관 개원에 즈음해 세계 조각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조각심포지엄이, 문신 아틀리에 건립 때는 세계 미술계 석학들의 심포지엄이 개최될 예정이어서 문신예술의 부흥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한 예술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4개나 세워지고 매년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열리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동안 최관장의 눈물과 회한의 시간이 고스란히 밑거름이 되어 빛을 보게 되는 셈이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예상치 못하게 타계한 거장 문신을 미술관 언덕에 안치한 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 겨를도 없이 질곡의 아픔들을 감내하면서 질풍노도의 세월을 달려온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제 그는 미술관 운영을 책임지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며 많은 사업들을 앞에 두고 재정문제 해결과 신인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안으로 디자인 아카데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일 ‘거장의 운명’전을 개막하며, 그는 문화마산을 함께 이끌 ‘디자인아카데미 Moonshin' 설립을 선언했다.

 

   
 
   
 
화가로, 문신예술의 전도사로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떠나 예술가로서 함께 살아왔지요. 문신선생님은 늘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신처럼 창조한다.”고 일갈했듯이, 천상 작가였지요. 그에게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예술가로 작품을 통해 보여 주었습니다.” 최관장은 그가 기억하는 문신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30년 전 프랑스 파리에 그림 공부하러 갔다가 문신을 만났다. “둘이 마음이 통해 스물다섯의 나이차에도 결혼을 했지요.”

그는 문신을 설득해 1980년에 고향인 경남 마산으로 귀향했고 그곳에서 선생님이라 부르는 남편 문신이 예술가로서 작업에 전념할 수 있게 내조했다. 문신이 88올림픽조각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고 10차례의 국제전시회를 비롯해 회고전 등 숱한 해외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조각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손수 가꾸고 만들어 온 2300여평의 마산 시립미술관을 기증한 것도 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문신이 세상을 떠나고 기증하고 남아있는 나머지 작품을 관리해 오면서 문신예술을 알리고자 고심해왔다. 그마저도 토탈 아틀리에와 원형미술관에 기증했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습니다. 문신선생님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전시행사로 바쁠 때는 직접 미술관 화장실 청소도 마다않는 그는 지난 한해 유난히 분주했다.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국가 브랜드화를 위한 세미나 및 특별전시회를 비롯해 문신예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
리는 중에도 화가로서 역량을 발휘해 자신의 그림을 그려 월간미술 기획초대로 ‘신의 요정-카프리치오’전을 열었다. 또한 편저 ‘MOON SHIN Theme Drawings'를 발간하는 등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화가인 그는 이제 파리 시테 아틀리에 입주작가로 한국과 파리를 오가며 자신의 예술적인 성취에 몰두하는 한편,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질주하며 치열한 예술혼을 붙태운 문신의 예술이 영생하기를 바라며 일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 문신 예술과 디자인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시도를 꿈꾼다.

글_임효정 / 사진_숙명여대문신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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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예술독립을 선언하고 현재의 예술지원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올바른 방향성을 이야기했다.
클래식, 연극, 영화 등 각 분야별 예술 지원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일시_ 1월 13일 수요일 12시 토니로마스(예술의전당점)
참석자_ 아츠앤컬쳐 편집위원 남정숙, 우상전(국립극장 배우), 진회숙(서울시향 월간 SPO 편집위원), 장순성㈜로봇 태권브이 CEO
정리_편집팀장 김수진  사진_홍선해



남정숙_ 2010년 한 해, 아츠앤컬쳐는 예술독립 선언을 하고 이를 통해 예술의 진정한 자립과 발전을 위해 힘쓰고자 합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분야에 대해 이해하고 생각을 넓혀 보고자 합니다.

먼저 영화 쪽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장순성_
지원금 받는 것에 의존하다보면 다양한 창작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창조집단의 성향은 비판적인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자본이나 관료적 지원에서 독립할 수 없다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지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제작자에게 파이가 적게 돌아가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불합리한 상영조건(극장티켓 수익 배분 비율)을 개선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남정숙
_
그렇군요.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을 받느냐 아니냐 하는 것 보다는 다양한 측면에서 제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상전_ 저는 무엇보다 예술가에 대한 복지제도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아직 뚜렷한 해법은 없지만 그냥 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봐야죠.

 

진회숙_ 맞습니다. 특히 연극 쪽 지원은 정말 시급하다고 봅니다.

물론 클래식 쪽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단시일 내에 클래식 인구가 확대되거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문화라는 이름의 사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예술인들의 배고픔이 사라진다고 할까요.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에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소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ktx 활용으로 단 시간 내에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봅니다.

우상전_ 사실, 돈과 시간, 그리고 지성이 있어야 문화를 즐길 수 있다고 봅니다.

계급사회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한 차이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좋은 공연을 보는 계층에게 특권의식을 주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더구나 클래식의 경우는 더 명확하게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고 봐요.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관람객 층이 두터워져야 합니다.

 

진회숙_ 우리나라 클래식 관객은 젊은 편이에요.

평균 연령층을 따져보면 50대 정도라고 보면 되거든요.

유럽의 경우는 거의 70대라고 할 정도로 평균 연령층이 높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오히려 우리나라 클래식에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여러 분야 중에서 우리나라의 클래식은 후발주자라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훨씬 예전부터 클래식을 자주 접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진 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이죠.

 

남정숙_ 우리나라가 그래도 관람객 연령층이 젊은 편에 속하는군요.

클래식에 희망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예술과 문화의 소비자에 대한 배려는 있으나 생산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회 적인 대우나, 명예도 없고 기본적인 생활 유지도 안 된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닐까요.

 

우상전_ 그렇죠. 연극계에서 수년간, 아니 10년간 몸담아 성실하게 연기해도 기초 생활도 안 되는 수입이고 다른 지원도 없으니 참 암담한 현실입니다.

연극의 경우는 지원금을 바라봐야 하므로 독립이 힘든 것이라고 봅니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콘텐츠 자체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죠.

순수예술인 연극은 반드시 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순성_ 연극에 열정과 뜻과 재능이 있어서 뛰어들어도 그렇게 보낸 열정을 바친 젊은 시간이 연 수입 200만 원도 안 된다는 것이죠.

기초수급대상자로 선정도 될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정확한 근로에 대한 파악이 안되니까요.

경제적인 지원이 힘들다면 차라리 대학 학자금처럼 대출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남정숙_ 연극인들에게 생활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준다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네요.

무상 지원이 힘들다면 이렇게 대출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상전_ 순수예술인 발레를 보면 연극인으로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은 기술 도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했습니다.

러시아로 부터 다양한 발레 관련 기술을 도입하고 또한 스타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발레는 유럽에서 3d 업종이고 그 대안이 한국인 셈이죠.

우리가 발레 시장에 침투해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오페라 역시 기피하는 종류가 되어 갑니다.

일본의 스모를 하와이언이나 몽고인이 하듯 말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내세울 것이 필요합니다.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판소리는 보존과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니 국악원이 아닌 국악청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발레에 비해 한국무용은 발전 못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공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무용을 세계무대에서 선보이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한국 무용 또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영화도 롤 모델을 통해 벤치마킹을 하고 있고 뮤지컬도 마찬가지입니다.

급속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것은 외부에서 인력과 기술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오페라 역시 이 처럼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연극의 앞길은 기술 도입에서 벽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발전시키기 어려운 분야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오태석, 이윤택 등 연극계의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의 연출력은 일본에서 도입해 온 것 입니다.

연극은 더 많이 나아가고 발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더디고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요.

연극 시장이 작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장순성_ 문학 쪽을 예를 들어 말하자면 시인이 시만 써서 생계유지가 되긴 힘든 세상입니다.

시 대신에 광고 카피를 쓰거나 작사를 하면 먹고 살 수 있지만 말입니다.

지원책을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으로 지원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연금 형태로라도 받을 수 있게 지원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직업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그게 걸 맞는 품위 유지비를 지원해주는 것이죠.

 

남정숙_ 스포츠의 경우는 연금이 있지요.

스포츠는 분야의 특성상 기록, 순위가 있으므로. 오히려 편리하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예술 분야는 이 점이 다르기 때문에 기준을 잡는 것부터 쉽지는 않다고 봅니다.

 

우상전_ 예술독립이 아니라 생존독립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생존독립이 되어야 예술독립이 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극작가가 소속된 극장에서 작품을 안내도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과학의 기술 도입은 잘 되어 가는데 예술의 기술 도입은 투자도 없고 결국 힘들어 집니다.

결과물만 보고 판단하고 성과주의, 뭔가 만들어내라는 압박을 가하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기술도입이 되어야만 해요. 예전 창법을 쓰던 사람은 요즘 작품에 캐스팅되기 힘듭니다.

재교육이 필요한 것이죠. 신기술이 필요하고, 감각적인 독립이 필요합니다.

영국은 현역 배우들도 체크 받고 교육 받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연극이 살아남을 길은 섹스어필 뿐입니다.

연극은 오락물이 아니라 내재된 욕망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남정숙_ 지원이라고 해서 무작정 돈 얼마를 지원해주고 어떤 결과를 내라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가의 삶 자체를 지원해 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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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 대한 지원 없으나 꿋꿋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터"


올해로 창간 4주년을 맞는 아츠앤컬쳐는 변화를 추구해 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이 있는 2월, 우리의 것을 아름답게 가꾸고 전해가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담은 작품을 표지로 선정하기로 한 것.
이에 서울시무형문화재 전수 교육 보조자인 자수연구가 손경숙의 작품을 표지로 선정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자수 예술가 손경숙의 손끝에서 창조되는 다양한 작품들, 도안을 그리고 한 땀 한 땀 공들여 수를 놓아 만들어진 작품은 오랜 시간과 정성을 담아 탄생된다.

친정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손재주로 자주예술가인 언니 손인숙과 더불어 자수로 작품을 만들어 온 손경숙은 이화여자대학 자수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친정어머니가 직접 옷을 지어주실 때
마다 어깨 너머로 바느질을 익혔다.

교장선생님이셨던 친정어머니는 세 딸들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실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자란덕분에 자매들은 타고난 솜씨에 창조적인 재능을 더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자수는 주로 베개, 경대, 보자기, 수저 집등에 놓는데 이들은 대부분 혼수품에 속한다.

혼례을 앞둔 신부가 손수 수를 놓아 정성스럽게 마련했던 것이다.

이밖에 여성들이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치장하던 장신구에도 수가 놓아진다.

노리개, 허리띠, 팔찌, 꽃신 등에 수놓은 문양들은 화려한 멋스러움과 더불어 주술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과 창조적인 면을 살려 전통이 깃들었지만 현대의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는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능을 익히기보다 창의력을 길러야

북촌 한옥마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자수예술가 손경숙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열린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항상 스스로에게 되묻곤 합니다. 내가 정말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 나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배우건 처음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방식을 처음 익히게 되면 나중에 교정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르칠 때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당부하지요. 혹시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하라고. 스승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스승이라고 해서 무조건 내 말대로 따르라고만 하면 곤란하죠.”

 

그에게 자수를 배우기 위해 학생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기도 하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온다.

그렇게 자수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도 각양각색이다.

 

“저에게 자수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다양한 편입니다. 20대 초중반의 여성분들부터 50대의 여성까지 있고 30대 남자분도 있습니다. 배우는 목적 또한 다양합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배우는 분들부터 취미로 배우는 분, 뜻이 있어 이쪽 길을 택하고자 하는 분들까지 각자 목적이 다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떤 목적을 가졌건 가르치는 원칙은 동일합니다. 자수를 놓는 것은 단순히 기능을 익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기능을 익힐 것이라면 재봉틀을 배워서 빠르고 정확하게 놓는 것을 배워야겠지요.

손으로 직접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과정이나 수를 놓기 이전에 도안을 구상하고 그리는 과정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저에게서 배웠다고 해서 제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제 것을 바탕으로 하되 본인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끔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제 방식입니다

또 자수를 배우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학생들 각자 주특기가 다른데 특정한 방식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학생들끼리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면서 실력
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이죠.” 




예술가에 대한 지원 없으나 꿋꿋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터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수를 놓다 보면 어깨가 뭉치거나 결리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것들 역시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받 아들여진다고 한다.

몇 번을 되물어도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단 한 번도 수놓는 일을 그만 둬야겠다고 마음먹거나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즐기면서 하는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축복인가.

육체적인 힘듦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희열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골무, 수저 집, 모시조각보, 노리개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이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탈이다.

평면에 입체감을 살려 우리의 탈을 그대로 재현해낸 이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처음에는 실제 탈위에 수를 놓아보았는데 입체감을 살리려고 한 시도는 좋았지만 수를 놓고 보니 아무래도 튀어나온 부분은 실이 들뜨고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평면에 수를 놓는 방법을 택해 지금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화려함이 두드러지는 중국의 가면이나 신을 상징하는 일본의 가면과 달리 한국의 ‘탈’은 양반사회가 존재했던 시절의 서민의 모습과 삶을 담고 있다.

본모습을 감추려는 가면이 아닌, 삶의 감정을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내준 탈인 셈이다.

이를 통해 삶의 애환을 표출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의 탈이 자수를 통해 새롭게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제가 자수를 놓게 된 데에는 어머니와 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연세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자수를 놓으시고 언니 또한 자수 박물관을 짓고 있을 정도로 열의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 자수 박물관이 올해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20에 국빈들이 방문해 우리문화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자수 전문가로서 정말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의 문화를 이렇게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국가의 지원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언니인 자수예술가 손인숙이 짓는 자수박물관은 모두 개인 부담으로 지어지며 그 어떤 지원도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전수를 받는 자수예술가 손경숙에게도 이렇다 할 지원은 없다.

단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북촌 한옥 마을에서 자수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비용이 지급되는 것뿐이다.

 

우리 문화를 아름답게 이어가는 예술가들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꿋꿋하게 계속 작품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손끝이 그 어느 것보다 더 단단하게 느껴진다.

 

글_김수진 / 사진_손경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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