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은 이 미친 사랑을 통해 대작을 탄생시키기도,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예술가의 사랑 이야기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끈다. 우선 사랑 이야기 일반이 주는 흥미와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정열이 그 안에 녹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주는 흥미가 그것이다. 예술가들은 일반인에 비해 보다 자유롭고 정열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사랑의 행로를 따라가 보는 것은 그러므로 곧 잘 그들의 예술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 된다.
빅토리아 여왕에게 퇴짜 맞은 밀레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초상화가로 당대 최고의 대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가 천거되자 이에 대해
퇴짜를 놓았다. 밀레이 앞에서는 모델을 서기 싫다는 것이었다. 왜 여왕은 이 정상의 화가를 배척했을까?
그것은 밀레이가 그림을 그리던 도중 유부녀인 모델을 유혹해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모델로 세웠던 유부녀를 아내로 삼았다고 하니 밀레이라는 화가가 꽤나 바람둥이처럼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정을 듣고 보면 밀레이가 꼭 바람둥이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밀레이가 그린 그 운명의 여인이 어떻게 생겼나보자. 그림은 시인 존 키츠의 ‘성 아그네스의 전야’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성 아그네스의 전야’는 젊은 연인이 벌인 열정적인 사랑의 도피에 대한 묘사로 유명하다.
그림의 주인공은 지금 어두운 방에서 조용히 옷고름을 풀고 있다. 화려하고 근사한 방이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과 여인의 표정이 왠지 애잔하고 적막한 느낌이 든다. 여인은 벌써 겉옷을 벗었다. 풀썩 주저앉은 그 겉옷은 그녀의 무릎께에 둘러 있다. 머리끈도 풀려 삼단 같은 머리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이제 손은 보디스에 가 있다.
그녀는 이처럼 자신의 체온을 지켜주던 꺼풀들을 하나씩 벗어버리고 있다. 그럴수록 그녀의 몸에 더욱 뚜렷이 떨어지는 달빛은 여신을 지키는 님프처럼 은밀하고도 부드럽다. 달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인, 님프들도 탐낼 수밖에 없는 여인, 바로 그런 비밀스럽고도 아리따운 여인으로 그림 속의 여주인공은 서있다.
여인의 이름 에피다. 에피는 1848년 유명한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과 결혼했다. 불행히도 결혼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부부 사이의 결정적인 문제는 남편인 러스킨에게 있었다. 그는 결혼 6년이
다 되도록 에피와 아무런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했지만, 남편이 계속 잠자리를 기피함에 따라 에피는 점점 깊은 정신적 공황으로 빠져들었다. 러스킨은 아이를 갖는 것이 싫고, 또 임신으로 에피의 건강이 상하게 될까봐 그런 것이라고 에피에게 변명했다.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이었다.
그가 이처럼 아내와의 관계를 기피한 것은 사실은 그에게 심각한 성심리적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에피가 관계를 갖게 될 때 무엇보다 그녀의 벗은 몸에서 체모를 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자신이 그동안 찬탄해마지 않았던 우아하고 위대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과 달리 체모가 있는 아내의 국부는 그를 극도로 실망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그 두려움이 끝내 아내를 멀리하게 한 핵심적인 원인이 었던 것이다.
에피는 이 사실을 1853년 러스킨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던 밀레이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밀레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까지 두 사람사이에는 연인으로서의 진정한 사랑과 신뢰가 필요했다.
둘 사이의 사랑과 신뢰는 서로 오랜 세월 알아온 데다 모델을 서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피어난 것이
었다. 결국 에피는 러스킨과 이혼했고 밀레이와 재혼했다. 졸지에 밀레이는 우정을 버리고 친구의 여자를 낚아챈 남자가 되었다. 비록 여왕을 비롯한 세인들의 비판적인 시선을 감수해야 했으나 두 사람은 보란 듯이 슬하에 4남 4녀를 두고 40년 간 해로했다고 한다.
과도한 사랑으로 목숨을 잃은 라파엘로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로는 자신의 정부 마르게리타루티를 모델로 <라 포르세리나>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서 여인은 수줍은 듯 손을 가슴께로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손으로 가슴을 다 가리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오히려 양쪽의 젖가슴이 도드라져 보인다. 손에 딸려온 천은 가슴 아래쪽의 배를 가리고 있지만, 워낙 투명한 천이어서 배꼽이 그대로 비친다. 허리 아래는 두터운 천을 둘렀는데, 왼손을 다리 사이에 가져감으로써 전형적인 정숙한 비너스(베누스 푸디카)의 자세를 만들고 있다. 스스로가 고결한 여인임을 애써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관능과 정숙의 대위법적 긴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여인의 눈은 관객을 향하고 있다. 살짝 미소를 띤
채. 그러나 그녀의 다정한 시선과 미소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 화가를 향한 것이다. 여인이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관능과 정숙의 뉘앙스를 동시에 풍기는 것은 이처럼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남자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는 “나를 품어 안아 주세요. 나는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마르게리타는 로마의 산타 도로테아에서 제빵사 프란체스코 루티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라 포르나리나
(제빵사의 딸)’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은 물론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다. 라파엘로는 로마에서 일한 12년 동안 정부를 곁에 두었는데, 마르게리타가 바로 그 여인이라고 전해져온다.
이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큰 의심 없이 믿어져온 사실이지만, 그 관계를 명백하게 확인해줄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마르게리타와 라파엘로 사이의 사랑은 화가와 모델 사이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하나로 미술사의 이 골짜기 저 언덕에서 칭송되어왔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바자리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사랑놀이를 과하게 즐기는 습관이 있
었다고 한다. 어느 날 보통 때보다도 더 무절제하게 사랑놀이를 펼친 라파엘로가 펄펄 끓는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려온 의사는 그의 과도한 섹스 사실을 모르고 몸을 식히기 위해 우선 피부터 빼는 부주의한 처치를 했다. 노총각 라파엘로가 사랑의 과로를 결코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라파엘로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어 버렸고 마침내 영원한 휴식을 맞았다. 그가 태어났던 날인 부활절 전 성 금요일에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면 때 그러나 마르게리타는 침상곁을 지키지 못했다. 부적절한 관계의 여인이라는 이유로 성직자들로부터 내쫓겼기 때문이었다.
비극적 사랑의 결말 모딜리아니
기다란 인물상으로 유명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그녀의 아내인 잔 에뷔테른의 사랑 이야기도 미술사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연시의 하나다.
3년여의 세월 동안 모딜리아니와 잔은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에 크게 기뻐하고 아파했다. 비록 두 사람의 이른 죽음으로 짧은 사랑의 궤적을 그리고 말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늘날까지 아련한 메아리로 남아 있다.
곱게 자란 잔의 부모는 두 사람의 결혼을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부부가 되었다. 모딜리아니가 병으로 죽지만 않았어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모딜리아니는 1920년 11월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침대로 뛰어들어 모딜리아니의 주검을 으스러질 듯 껴안았다고 한다. 임신 8개월의 그녀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주검에 들러붙자 사람들은 강제로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녀는 먹이를 문 맹수처럼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와 모딜리아니를 갈라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한참의 통곡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스스로 그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모딜리아니의 장례를 준비하던 그들은 또 한번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잔이 친정 부모의 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힘겹게 부부가 된 두 사람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데 대해 슬퍼하지 않은 파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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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에게 잔은 영원한 구원의 여인이었다. 죽음의 나라까지 동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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